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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9년 임진(1892) 3월 27일(을유) 맑음
29-03-27[28] 경무대에서 경과 별시 문무과 전시를 시취할 때 행 도승지 이재순 등이 입시하였다
○ 오시(午時).
상이 왕세자와 경무대에 나아가 경과 별시 문무과 전시를 시취하였다. 이때 입시한 행 도승지 이재순(李載純), 행 좌승지 박용대(朴容大), 행 우승지 윤용식(尹容植), 좌부승지 민영주(閔泳柱), 우부승지 조만승(曺萬承), 동부승지 이해창(李海昌), 가주서 김태욱(金泰郁)ㆍ이희화(李喜和), 기주관 이봉원(李鳳元), 별겸춘추 홍종영(洪鍾榮)ㆍ윤두병(尹斗炳), 검교제학 김영수(金永壽), 검교직제학 김규홍(金奎弘)ㆍ조동면(趙東冕)ㆍ김종한(金宗漢), 직제학 민종식(閔宗植)ㆍ이준용(李埈鎔), 검교직각 박창서(朴昌緖), 검교대교 김만수(金晩秀)ㆍ김한제(金翰濟), 원임 대교 민형식(閔衡植), 교리 박돈양(朴暾陽), 부수찬 이민영(李敏英)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통례가 막차(幕次)에서 나오기를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포과익선관(布裹翼善冠), 포원령포(布圓領袍), 포과오서대(布裹烏犀帶), 백피화(白皮靴) 차림으로 여(輿)를 타고 광림문(廣臨門)을 나갔다. 약방 제조 이돈하(李敦夏)와 부제조 이재순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침 일찍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신무문(神武門)을 나가 경무대로 나아갔다. 통례가 여에서 내리기를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와 어좌(御座)에 올랐다. 왕세자가 시좌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표신을 내어 포성(布城)을 연 다음 유생들을 시장(試場)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시위와 종승 가운데에서 시관으로 낙점받은 사람이 있는데, 내려가서 일체 예를 행하도록 합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독권관인 행 이조판서 이승오(李承五),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 민종묵(閔種默), 행 호군 이명재(李命宰)와 대독관인 행 부호군 정이원(鄭履源),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 박용원(朴用元), 행 부호군 이승우(李勝宇), 부사과 심후택(沈厚澤)ㆍ정면석(鄭冕錫)과 고관(考官)인 행 병조판서 민영소(閔泳韶), 행 대호군 이교헌(李敎獻)ㆍ이규석(李奎奭)과 참고관(參考官)인 행 부호군 한인호(韓麟鎬)ㆍ이규대(李奎大)ㆍ강준영(姜濬永), 총어영 파총(摠禦營把摠) 허당(許塘)이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고 차례로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갔다.
상이 제(題)를 ‘문체는 부(賦), 시제는 세삼십년팔백 기어차(世三十年八百基於此), 시간은 신시(申時)까지’라고 쓰도록 명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참고관 이규대는 천담복(淺淡服)을 입어야 하는데 잘못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입참(入參)하였으니, 전에 없던 일로 매우 소홀히 한 데에 해당됩니다.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본원이 추고를 청하는 것 외에는 달리 시행할 만한 벌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禮)에 어두운 소치이니, 나처(拿處)하라.”
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대독관 정면석은 제때에 대령하지 않았으니, 전에 없던 일로 매우 놀랍습니다.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본원이 추고를 청하는 것 외에는 달리 시행할 만한 벌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엄하게 추고하라.”
하였다. - 탑교를 냄 - 전교하기를,
“고관 민영소를 명관(命官)으로 하여 행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무과 별시 전시는 중일각(中日閣)에서 명관으로 하여 행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시위한 군병, 배위한 군병, 배립한 군병에게 각각 그 군영으로 하여금 건호궤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이번 별시에는 몇 사람을 뽑습니까?”
하니, 상이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이번 별시에는 20인을 뽑으라.”
하였다. 이승오가 편차(編次)를 마쳤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시권(試券)을 읽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독관이 읽으라.”
하였다. 정면석이 첫째 장(張)을 읽어 여덟째 구(句)에 이르니, 상이 그만두라고 명하였다. 이승오가 아뢰기를,
“등차를 쓰는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3장은 정자(正字)로 삼중일(三中一), 삼중이(三中二), 삼중삼(三中三)이라고 쓰고, 그 나머지는 모두 삼중(三中)이라고 쓰라.”
하였다. 이승오가 등차를 썼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봉미(封彌)를 뜯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림이 봉미를 뜯으라.”
하였다. 홍종영이 봉미를 뜯은 다음 읽어 아뢰었다. 전교하기를,
“환궁은 자내의 예(例)로 할 것이니, 해방은 그리 알라.”
하였다. 상이 어좌에서 내려와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이재순이 표신을 내어 계엄을 풀기를 청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무과 별시 전시는 중일각(中日閣)에서 명관으로 하여 행하라.
[주-D001] 세삼십년팔백 기어차(世三十年八百基於此) : 이 말은 삼십대(三十代) 800년의 역사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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