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의 사관은 중종과 경빈 박씨, 작서의 변과 중종의 치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경빈은 성품이 공손하지도 않고 만족할 줄도 몰라서 사랑을 얻으려는 술책만 힘썼다.
은총을 믿고 멋대로 방자하게 구는가 하면 분수에 넘친 마음을 품고
뇌물을 널리 긁어들였으므로 간청(干請)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그러고도 전혀 경계할 줄을 모르다가 이런 화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시론(時論)은 박씨만의 죄가 아니라 역시 임금이 지나치게 총애한 소치라고 했다.
— 《중종실록》 58권,
중종 22년(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4월 26일 (임신)
사신은 논한다.
미(嵋, 복성군)가 작서의 변이나 목패를 매단 모의에 간섭하고 참여하였다면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죄이므로 드러내어 처형해도 애석할 것이 없겠다.
그러나 간흉의 무리들이 거짓 공론을 빙자하여 군부를 협박,
임금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면서도 조정으로 하여금 감히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 《중종실록》 74권,
중종 28년(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5월 26일(무진)
사신은 논한다.
상(중종)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남음이 있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비록 일을 할 뜻은 있었으나 일을 한 실상이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지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에 다스려진 때는 적었고 혼란한 때가 많아
끝내 소강(小康)의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 슬프다.
사신은 논한다.
인자하고 공검한 것은 천성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려
견성군(甄城君)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 단경왕후)를 내치고 박빈(朴嬪, 경빈 박씨)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福城君)과 당성위(唐城尉)를 죽여 부자간의 은의(恩義)가 어그러졌고,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誅戮)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야박해졌으니 애석하다.
— 《중종실록》 105권,
중종 39년(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11월 15일 (경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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