叅議公 韓 磌 학문 이론 위기지학(爲己之學)
공(公)의 휘(諱)는 磌 이요, 字는 子珣(자순)이고, 아호는 류안(霤岸) 이다.
조선 세종(世宗) 시대의 문신이다. 순창군사를 지낸 서성부원군 영정(西城府院君)(永矴)의 삼형제중 첫째 양절공(襄節公) 確(확)이고, 둘째 참의공(叅議公) 磌(전)이고, 셋째 정랑공(正郞公) 질() 인데, 공은 태종(太宗) 8년(1408)에 출생하였으며, 15살에 공부에 일평생을 바칠 것을 마음으로 다짐하였을 것이다. [十有五志于學] 그리고, 15년이 지난 뒤 자신의 공부 성과를 가리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적 관점, 즉 세계관을 확립하였을 터[而立]. 그리고 10년의 적공(積功)을 더하여 ‘세상사에 한 점 의심이 없는 경지[不惑]’에 도달하였고, 공부를 하고서는 마침내 ‘우주의 이치를 알 게 되는 경지[知天命]’를 성취하였을 것이다.
위기지학을 함으로써 자신의 본 마음을 밝혀 그것을 실천하는 이상적 인간이 성인(聖人)으로 규정되므로, 위기지학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성인이 되는 것으로 귀결 되기 때문에,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는 공부는 ‘즐거움’이라고 하였은즉. 공(公)은 공부는 자신의 내면으로 그 중심이 쏠려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공부가 지식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외적 성취를 추구한다면, 公께서 공부는 자아의 성찰을 통한 내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에서는 전자를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 하며, 후자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한다. 자아의 정신적 성취가 위기지학의 목표라면, 앞서 본 공부 진경(進境)은 위기지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을 시작한 이래, 내면의 자아를 튼실하게 세워 마침내 세계가 운행되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경지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1445년(세종 27)전라감사의 막료로 있던 조원복(趙元福)이 전라감사 한전(韓磌)에게 수계선생비점맹호연집(須溪先生批點孟浩然集) 책의 간행을 건의하여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에서 목판 판각용(板刻用) 고본(稿本)을 마련하여 독자적으로 간행한 점과 *경재하연선생(敬齋 河演先生)의 *신옹유부(神翁遺符) 韓磌(朝鮮) 撰 내용을 보면, 공께서는 조선전기의 학문적 관심을 두게 된 것으로 사료 된다.
그런데, 위기지학은 다시 자기 내면으로 회귀하여, ‘타인의 칭찬과 비방에 초연한 경지’, 즉 ‘세상사의 시비에 무심한 경계’인 ‘이순(耳順)’에 이르게 된다. 이 경지가 어찌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보다 더 우월하냐고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손자인 15세 韓訓(한훈) 은 불교의 위대한 선승(禪僧)이 ‘물욕’, ‘색욕’, ‘수면욕’ 등 인간의 욕망과 오감을 자극하는 번뇌를 모두 극복하였지만 끝내 남는 것이 ‘명예욕’이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어쩌면 세상의 시비에 초연한 ‘이순’의 경지는 인간으로서 진정 도달하기 어려운 경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불교전서 천경집68쪽 次韓訓長韻)
또한, 성종25년 홍치(弘治) 갑인(1494) 별시(別試)에 제1인으로 급제한 한훈(韓訓) 과거시험 주제였던 천지인문(天地人文)에 보면, 하늘을 보면 자연의 문(文)이 있으므로 일월(日月)이 1)조림(照臨)하니 별들이 이에 찬연히 벌이고 땅이 자연의 문(文)이 있으므로 산천(山川)의 흐름과 재(峙)가 이에 있습니다. 초목이 이에 살고 자랍니다. 사람이 천지(天地)의 기운을 받아 2)양의(兩儀)의 사이에서 산 즉 그 도덕과 인의(仁義)의 문(文)이 가운데에서 실(實)함 그래서입니다. 예악(禮樂) 문장(文章)의 문(文)은 밖에 나타남이니 그래서입니다.
그 문(文)을 말한 즉 비록 각각 같지 않으나 그 이치를 말한 즉 일찍이 다름이 있지 아니하나 어찌 3)결승(結繩)의 시대 앞 사람은 문(文)이 아마 펴지 못하였을 것이고 천지(天地)의 문(文)이 이미 4)하도(河圖)가 나온 뒤는 이미 나타났으니 인문(人文)이 이미 나타나 5)삼재
(三才)의 도(道)가 비로소 갖추어졌습니다.
이는 곧 천지(天地)의 문(文)이므로 곧 인(人)의 문(文)입니다. 하였다.
이러한 공께서는의 위기지학 의 공부는 ‘욕망과 이성의 불협화음이 없는 학문적 평화[心所
欲不踰矩]’를 원 했을 것이다. 또한,17세 *한윤명(韓胤明) 사형(士泂)사경(士冏)은 시칭 5)낙화명유(洛下名儒)라 일컬었으며,성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명학(陽明學)·실학(實學), 수주자학파(守朱子學派)·탈주자학파(脫朱子學派)라는 용어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우계 성혼(1535~1598)의 계통을 잇는 소론계통의 학자들은 현실에 맞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기발이승지(氣發理乘之)설에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하는 양명학을 수용하여 이(理) 중심의 관념적인 성리철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소론의 성리철학은 조선의 양명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조선화된 조선양명학이었다.
양명학문의 관점에서 학문을 더욱 정진 하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王陽明의 動靜觀은 그의 7)體用觀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宇宙本體와 心의 本體는 모두 良知 本體를 말하고 本體의 體와 用은 體에 나아가면 그 속에 用이 있고 用에 나아가면 그 속에 體가 있으며, 體가 곧 用이고 用이 곧 體인 相卽관계를 갖
는다. 따라서 모든 宇宙本體와 心體에 관한 動靜 표현은 모두 本體의 卽體卽用을 설명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陽明에 의하면, “動極而靜 靜極而動,” “動中有靜 靜中有動”, “動而生陽 靜而生陰”은 宇宙 本體의 8)感通과 9)寂然을 설명하는 술어로서 本體의 妙用이 쉬지 않는 가운데 항상된 體는 바뀌지 않는 것을 설명한다. 이 때의 動靜이 곧 體와 用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天理가 유행하는 하나의 이치(一理)로 本體의 완전성을 표현한다.
조카들의 항렬자(致:치) 와는 달리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항렬자를(忠:충)자 로 하였다.
왜 그랬을까? 진심으로 참 마음을 다하는 중심이 되어야 심성론을 보여주므로. 학문에 있어서 심(心)·성(性)·정(情)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의 양상을 다룬 유학이론 바탕으로 10)성즉리(性卽理) 11)주희(朱熹)에게 있어서 천지자연과 인간 존재의 통일적 해석은 성(性)에서 이루어졌다. 즉, 성이란 12)천리(天理), 곧 13)태극(太極)이 인간이라는 개별적 존재에 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연의 성의 내용을 주희는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덕(四德)이라고 한다. 원래 본연지성은 존재론적으로 이, 즉 태극이 분수(分殊)로서 사람에게 내재한다. 이것이 그 존재 그대로 어떠한 매개도 없이 당위(當爲)로서의 규범으로 정립된다. 주희는 “성이란 태극의 혼연(渾然)한 본체로서 원래 이름 붙일 수 없다. 다만 그 가운데 만가지 이치[理]를 함유하고 있는데, 대강령이 되는 것이 네 개가 있다. 그것을 인·의·예·지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위기(爲己)는 나를 내가 되기위해 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을 이름이며, 나를닦는것의 14)수기(修己)의 실천이 곧 위기(爲己)이다 라고 생각 하셨을 것이다.
한전(韓磌)은 어린시절, (義盈庫丞)의령고승 직업을 가진 적이 있다. 公 은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기에 공부의 어떤 부분은 이처럼 생존을 위해서 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公께서 공부는 근본적으로 자아의 내면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위기지학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었다. 15)‘지학(志學)’에서 ‘종심(從心)’에 이르기까지의 공께서는 공부 역정이 이를 말
하고 있는것이다.
유학에서는 세상의 학문을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분리해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하는 학문이고,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을 위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놓고 보면, 남을 위하는 학문이 좀더 인간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지만 위에서 말하는 ‘위 한다’는 개념은 보이기 위함 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서, 위인지학(爲人之學)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의 학문은 자기개발에 가치를 두고 자아 수련을 통한 자아 확립을 목표
로 하는 학문이다.
위인지학(爲人之學)은 "爲 人之耳目 之學"을 줄인 말이다. 즉, "다른 사람의 이목을 위한 학문"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그 귀(耳)로 자기의 말을 듣고, 그 눈(目)으로 자기의 모습을 보는데 애초에 그 보이고 들리는 것을 좋게 하려는 데에 뜻이 있으니 속으로 바르게 되는 것보다 겉으로 보이는데 힘쓰게 되고, 자기의 할 바에 충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명성을 얻기에 힘쓰게 되고, 나중에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은 모두 학문을 하는 애초의 뜻이 완성된 사람이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爲 己之心性 之學"을 줄인 말이다. 이 뜻은 "자기의 심성을 위하는 학문"의으로 풀이될 수 있다 .
*敬齋 河演:(1376 : 禑王2 ~ 1453 : 端宗1)
*신옹유부(神翁遺符):萬曆三十七年己西(1609)慶尙道陜川海印寺開刊
*불교전서 천경집 68쪽
次韓訓長韻
獨在秋山破衲寒 半生聊得此身安 金文讀處驅心
賊玉燭明時禮法壇 晦跡韜光有易 顯名揚世卽
爲難 坐來默算人間事 政是嵬百尺竿
가을산에 홀로 있으니 입은 옷은 차갑고, 반생에 얻었던 두려움있어 몸은 편안 하다.
금문을 읽을 곳이 있으니 마음은 채찍질 한다.
법단의 예를 갖출 때 밝게 비친 빛은 옥을 해치고, 빛이 있는곳을 희미 하게 감춘다.
어려움이 있은즉, 세상에 이름은 올라 나타난다,
묵묵히 앉아 스산 하니 이것이 인간사가 아니겠는가
높은 경치도 백척 지간 이로구나.
1)조림(照臨) : 해와 달과 별이 위에서 비춤.
2)양의(兩儀) : 천지(天地), 음양(陰陽).
3)결승(結繩) : 태고시대 문자가 없을 때 끈의 매듭으로 약속의 부호로 삼음.
4)삼재(三才) : 천지인(天地人).
5)하도(河圖) :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
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
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윤명(韓胤明): 마음을 물처럼 잔잔하고 거울처럼 맑게 하고자 하여 호를 형암(炯菴)이라고 하였다.
6)낙하명유(洛下名儒): 퇴계선생문집(이황)甲寅年(갑인년1554년)퇴계54세때지움.
7)體用觀(체용관):체는 몸이고 용은 맘이다. 몸은 음이요, 맘은 양이다.
8)感通(감통):마음에 느끼어 통(通) 함.
9)寂然(적연):아무 기척이 없이 조용하고 기괴(奇怪)함, 고요하고 쓸쓸함.
10)性卽理(성즉리):중국(中國) 송(宋)나라 때의 정이천(程二川)이 처음으로 제창(提唱)하고 주자(朱子)가 이어받은 주자학의 근본(根本) 명제(命題). 성(性)이 우주(宇宙) 만유(漫遊)의 존재(存在) 근거(根據)인 이(理)의 내재태(內在態)이며, 성범(聖凡)의 구별(區別) 없이 보편적이라고 주장(主張)하며, 성즉리로써 도덕적(道德的) 완전(完全)의 가능(可能)
근거(根據)가 만인(萬人)에게 내재하는 보편적 순수(純粹) 인간성(人間性)에 있음을 정식화(定式化)한 것임
11)朱熹(주희):송(宋)나라 때에 시작(始作)된 新儒學(신유학)인 宋學(송학)의 대성자이며, 그 최고(最高)의 권위자(權威者). 자는 元晦(원회) 또는 仲晦(중희). 호는 晦菴(회암), 晦翁(회옹)
12)천리(天理):①천지(天地) 자연(自然)의 도리(道理) ②하늘의 바른 도리(道理)
13)태극(太極):우주(宇宙) 만물(萬物)이 생긴 근원(根源)이라고 보는 본체(本體)
14)수기(修己):자신(自身)의몸을닦음.
15)지학(志學):①학문(學問)에 뜻을 둠 ②15세를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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