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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EJOUNG!------(조선왕조 한진휘 論).....

한급의 사위 최수성(崔壽峸)

관리자 2026.09.15 09:42 조회 수 : 708

고전번역서 > 연려실기술 > 연려실기술 제8권 > 중종조 고사본말 >

최종정보

 

최수성(崔壽峸) 지금 그 자손이 해남(海南)에 사는데 스스로 본관을 덕수(德水)라고 자칭한다. (今其子孫在海南自稱德水人云)

최수성은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이요,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기묘록》에는 강릉(江陵)이 본관으로 되어있다. (崔壽峸字可鎭號猿亭原州人 己卯錄作江陵人)

○ 젊어서부터 세속 밖에 뜻이 있었고 성격이 시원스러워 얽매임이 없었다. 19세 때 속세를 피하여 멀리 돌아다니며 유망한 산수를 두루 찾았다. 가는 곳마다 소나무를 켜서 거문고를 만들어 타다가 끝나면 버리고 떠나 일찍이 한곳에 머물러 살지 않았다. 시가 뛰어나서 훌륭 하고 게다가 글씨와 그림도 잘했으니 참으로 절세의 기이한 재주였다. 한급(韓汲)이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부임하여 청백당(淸白堂)을 짓고 스스로 높은 체 하다 가 얼마 안 되어 뇌물을 받아 죄에 걸렸다. 한급에게 출가하지 않은 딸이 있었는데 그와 혼 인하기를 부끄러워 하니 공이 자청해서 사위가 되었다. 풍속이 큰 소매를 숭상하여 소매통 이 몹시 넓었는데, 최공은 겨우 팔 하나가 들어갈 만한 소매 좁은 옷을 만들게 하였으니, 대개 세상에 벼슬할 의사가 없어서 대중과 달리하기를 힘써 세상을 희롱한 것이었다.

《병 정록》 《패관잡기》

 

○自少有方外志磊落不覊年十九逃世遠遊遍觀名山水到處剖松作琴彈罷棄去未甞留住作詩飄逸且 善書畵眞絶代奇才也韓汲任江陵府使搆淸白堂以自高未幾以贓抵罪有女未歸人差與爲婚公自請爲 婿俗尙大袖其制甚濶崔令造窄袖衣僅容一臂蓋無人世宦遊之意而務異乎衆以玩一世 丙丁錄稗官雜記

1487년(성종 18)~1521년(중종 16) 二十世 文正公 諱 壽城 卯酉坐 貞敬夫人淸州韓氏 祔 (강릉시 대전동 산108) 從十三代 大統領 崔奎夏 謹識

 

경포대(鏡浦臺) :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누각으로, 1326년(충숙왕13)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 에 의해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傍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되었으며, 1508년(중종3) 강릉 부사 한급(韓汲)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