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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EJOUNG!------(조선왕조 한진휘 論).....

掌令公 丁理 遺事

관리자 2026.09.15 09:49 조회 수 : 779

신정리.jpg

 

掌令公 丁理 遺事(장령공 정리 유사)

 

公(공)의 諱(휘)는 丁理(정리)인데 高麗駙馬(고려부마:壯節公遺事에「娶眞宗大王孫王瑤女」라하고 肅宗壬午 譜에는 配 王氏의 父가 永禧君 瑤라 하고 高宗癸酉譜에는 配王氏의 外祖 陽城君 李守全을 添書하였음) 로서 朝鮮朝(조선조)에 들어와 맨 먼저掌令(장령)을 除拜(제배)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壽(수)는 八 七歲(팔십칠세)였다.。

公(공)은 어려서부터 慷慨(강개)하여 氣節(기절)이 뛰어났으므로 從祖(종조) 御史公 (어사공)과 季父(계부) 宗簿寺令公(종부시령공)이 함께 奇特(기특)히 여기고 사랑하더니 차츰 長成(장성)하 게 되자 文章(문장)과 學行(학행)으로 當時(당시)의 推重(추중)하는 바 되었다。

高麗(고려) 末葉(말엽)에 즈음하여 奸臣輩(간신배)들이 權勢(권세)를 부리어 國政(국정)이 날로 글러가자 公(공)은 벼슬에 뜻을 두 지않고 세상과의 因緣(인연)을 끊고 오직書史(서사)를 즐기었다。

太祖(태조)가 王位(왕위)에 오른 뒤로 세 차례에 걸쳐나라의 부름을 받았으나 應(응)하지 아니하고 茂朱(무주) 仙雲山(선운산)에 들어가서 蹤迹(종 적)을 감추고 自號(자호)하기를 仙雲居士(선운거사)라 하였다。

子孫(자손)에게 遺戒(유계)하되 科擧(과거) 에 나아가지 말고 墓碑(묘비)에도 朝鮮朝(조선조)의 官職(관직)을 쓰지말라고 하였는데 時人(시인)들이 이 를 기리어 宗簿寺令公(종부시령공)에게 견주기도하였다.

掌令公丁理遺事公諱丁理高麗駙馬入我朝首拜掌令不就壽八十七 公自兒時慷慨多氣節 從祖御史公及 季父宗 簿令公皆奇愛之 及長文章學行爲時推重當 麗季權奸用事時政日非 公絶意仕䆠杜門斂跡惟以書史自娛 太祖承 禪之後三徵不起遯跡 茂朱仙雲山自號仙雲居士遺戒 子孫勿赴擧墓道勿書本朝官啣 時人並美於宗簿令公矣-

 

묘(墓)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선운사 허여성(虛如城) 건좌(乾坐)-

배(配) 개성왕씨(開城王氏) 부부 영희군(永禧君) 요(瑤) 一昨:해(該) 자(字)는 추지(推之) 1421년(세종 3) 장령(掌令), - 자(子) 자의(子儀) 감찰(監察) 1424년(세종 6) 호군(護軍), 1425년(세종 7) 우군경력(右軍經歷)을 지냈다. 11세 연(衍)→ 12세 중명(仲明)→ 13세 집(諿)→ 14세 이(彛)의 2남→ 15세 정도(丁道),정리(丁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