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東皐權相國詩-----權近
甲戌夏 近僑萬玄化洞吾宗領三司相國邸第之北一造.....
1394년(태조 3) 여름에 제(權近)가,
우리 일가영삼사사 상국(領三司事相國, 權仲和) 저택의 북쪽에 붙여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 가서 뵙고 물러 나온 뒤 수 일 만에 병이 걸려,
달이 넘도록 낫지 않아서 자리에 누워 신음하였기에,
항상 다시 찾아봅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홀연히 어느 날, 장수(長鬚)를 보내어 귀한 선물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잔치에 임금을 모셨는데, 임금께서 진어하시던 음식을 거두어 나에게 내리셨다.
은총이 지극한지라 내가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없으니,
친척과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 임금이 주신 영광을 빛나게 하여야겠다."라고 하였다.
제(權近)가 병을 참고 일어나서, 절하여 받고도 몸소 가서 사례하지 못하고 또 말하기를, "공(權仲和)은 넓은 재국(才局)과 정통한 지식과 맑은 덕행과 단아한 명망으로 성조(盛朝)의 개국(開國)하는 날을 만나서, 전장(典章), 생용(笙鏞), 보불을 만들어 일대(一大)의 정치를 일으키는 것은, 임금이 반드시 공(權仲和)에게 물은 뒤에 정하였고,공은 조정의 전장(典章)을 익히 알고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여, 매사를 반드시 옛과 지금을 인증하여 섬세하고 정밀하게 하여 청문(淸問)에 답하였으므로, 번번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임을 입었습니다.
물러나오면 겸손하고 조심하여 말을 못하는 것 같이 하고, 일호(一毫)도 자긍(自矜)하는 빛이 없었고, 한거(閒居)할 적에는 도서를 즐기면서 집안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므로,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중히 여겼고, 물의(物議)가 이 때문에 높게 여겼으니, 지위가 삼사(三司)를 거느리고 존귀(尊貴)가 백호에 으뜸이 되어 은총의 후함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權近)는 공(權仲和)에게 자손의 항렬이 되며, 일찍이 연묵(연墨)의 말기(末技)로 공(公)을 전방(銓房), 문사(文司)에 20여 년을 섬겼는데, 은의로 대우한 것이 깊고 오래니 마땅히 조석으로 계속하여 뵙고 섬기기를 부모같이 하여야 하는 데도 용열(庸劣)하고 게을러서 예(禮)와 신의를 폐하고 문하(門下)에 찾아가 가르침을 듣는 것이 여러 달만에 겨우 한 번 정도이니, 공(權仲和)을 저버림이 많습니다.
마땅히 무례한 것을 꾸짖어 절교하더라도 아무 말 못할 처지인데, 이제 끊지 않고 거두어 주고 은총을 나누어주니, 이것은 공의 넓고 큰 도량과 인자한 덕이 또한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느껴 스스로 말 수 없어서 애오라지 졸(拙)한 시 두 절구(絶句)를 지어 좌우에 바쳐, 위로는 공의 하사받은 영광을 치하(致賀)하고 아래로는 나의 감사히 생각하는 정을 사례합니다.
[權近의 詩]
성조에서 노성한 신하를 높이니------ 盛朝崇重老成臣
물망이 높아 진신을 거느렸네-------- 雅望巍巍領縉紳
잔치 모시고 돌아오매 인하여 남은 음식을 내리니 ------- 侍宴歸來仍賜俎
은택이 널리 마을 사람에게 미쳤네 ------ 恩波覃及里閭人
비 오는 날 병져 누웠으니 해는 왜 이리 긴가 ------- 雨中伏枕日何長
홀연히 가동을 보니 기뻐서 미칠 듯하네 ------ 忽見家童喜欲狂
내사를 상공이 나누어 주었다 하거니 ------ 報?相公分內賜
진귀한 음식이 오히려 어로의 향기 띠었네 ------- 珍羞猶帶御爐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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