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형(韓致亨)
한치형은 자는 형지(亨之)이며, 본관은 청주(淸州)요, 좌의정 확(確)의 조카이다. 음관으로 벼슬하여 좌리 공신으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이 되었다. 병진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질경공(質景公)이고 임술년에 죽으니 나이 69세였다. 갑자년에 화가 무덤에 미쳤다.
○ 공이 형조 판서로 있을 때 너무 부지런하여 늦게 퇴출하기 때문에 낭관(郞官)들이 견디지 못하여 아침 저녁으로 괴로워했다. 그 조카 건(健)이 정랑으로 있었는데, 한가한 날 가서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하기를, “함종부원군 어세겸(魚世謙)은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출해도 무관한데 아저씨께서는 그리 애쓰실 게 뭐 있습니까.” 하고 말하니,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어함종(魚咸從)은 문장과 도덕이 출중하여 비록 직무에 태만하여도 오히려 취할 게 있지만 나와 너는 달리 뛰어난 점이 없으니 직책을 조심해 지키는 것이 옳지 않으냐. 내 뜻이 그러하다.” 고 하니 건이 부끄러워 물러갔다. 《충민공잡기(忠敏公雜記)》
韓健------한확의 손자요 한치인의 아들이다.
○ 공이 남방으로 순찰하러 갈 때 종사관 두어 사람이 따라 갔었는데, 문득 보니 강가의 화사한 집에 꽃과 대나무가 둘러 있고, 수양버드나무에는 붉은색 준마를 매어 놓고, 폭건(幅巾 벼슬하지 아니한 선비가 한가히 있을 때 쓰는 건)을 쓴 선비가 난간에 기대어 매를 길들이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니 종사관들이 한창 괴롭게 길가던 다음이라 그것을 보고 모두 부러워하였다. 이에 공이 돌아다 보며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저 이에게 전옥서 참봉(典獄署?奉)이라도 준다면 금방 저 집을 폐쇄해 버리고 말을 달려 조정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소문쇄록》
[韓致亨家人夢乘輿騰空]
一日家人夢見有黑衣數十 肩綵輿終天下威儀甚盛公忽乘輿騰空而去俄而卒---昭代紀年 燕山甲子被禍
하루는 집사람이 꿈에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수 십명이 채색수레를 어깨에 메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위엄과 의식이 매우 성대하였는데 공이 홀연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얼마 안 있어서 죽었다
한치형은 청주인이니 자는 通之다. 연산주 병진(2년1496년)에 크게 임명되어 영상에 이르렀다.
재상이 되어 모든 나라의 일을 나란히 벽에 써 붙여놓고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서 마음에 깨닫은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아뢰어 시행하기를 청하여 폐한 것을 거행하지 않음이 없었고, 이로운 일은 일으키지 않음이 없으니 백성들이 편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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