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HTML5 Audio Player, powered by http://amazingaudioplayer.com

 

先系 이야기
매화---조선전기
난초---조선후기
국화--外家
대나무---master
my story and that or what not

A!~~~MAEJOUNG!------매화

[家門實記---명에 가신 12世祖母님 ]

 

한계란~[태종10년.1410년 4월9일~성종14년1483년 5월18일]

(조선왕조실록에 明에가신 할머님들의 기록)

    

세종 026 06/10/17 (무오) 002 / 중국에 뽑혀간 한씨 등이 대행 황제에게 순사함을 사신이 말하다.

사신이 말하기를,

“전후로 〈중국에〉 뽑혀 들어간 〈우리 나라 여자〉 한씨(韓氏) 등이 모두 대행 황제(大行皇帝)에게 순사(殉死)하였다.”

 

하였다. 이보다 앞서 상인(商人)의 딸 여씨(呂氏)가 황제의 궁중에 들어와 본국의 여씨(呂氏)와 동성이라 하여 좋게 지내려고 하였으나, 여씨가 들어주지 아니하므로, 상인의 딸 여씨가 감정을 품고, 권비(權妃)가 졸(卒)하게 되자, 여씨가 독약을 차에 타서 주었다고 무고하였다. 황제가 성을 내어 여씨와 궁인 환관 수백여 명을 죽였다. 그 뒤 상인의 딸 여씨가 궁인 어씨(魚氏)와 함께 환자(宦者)와 간통하였는데, 황제가 알면서도 두 사람을 총애하는 정리로 발설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스스로 두려워하여 목을 매어 죽었다. 황제가 성이 나서 사건이 상인의 딸 여씨에게서 났다 하고, 여씨의 시비(侍婢)를 국문하니, 다 무복(誣服)하여 시역(弑逆)을 행하고자 하였다 하므로, 그 일에 연좌(連坐)된 자가 2천 8백 인인데, 모두 친히 나서서 죽였다. 어떤 이는 황제의 면전에서 욕하기를,

“자기의 양기가 쇠하여 젊은 내시와 간통한 것인데, 누구를 허물하느냐.”

고까지 하였다. 뒤에 황제가 화공을 시켜 여씨와 젊은 환관과 서로 포옹하고 있는 형상을 그려서 후세에 보이려고 하였으나, 어씨(魚氏)를 생각하여 그러지 못하고 수릉(壽陵) 곁에 묻었는데, 인종이 즉위하자 파내어 버렸다. 이 난이 처음 일어날 때, 본국의 임씨(任氏)·정씨(鄭氏)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황씨(黃氏)·이씨(李氏)는 국문을 받아 참형을 당하였다. 황씨는 다른 사람을 많이 끌어 넣었으나, 이씨는 말하기를,

“죽기는 마찬가지라, 어찌 다른 사람을 끌어 넣을까. 나 혼자 죽겠다.”

하면서, 끝까지 한 사람도 무고하지 아니하고 죽었다. 이에 본국의 여러 여자가 모두 죽었는데, 홀로 최씨(崔氏)는 일찍이 남경에 있었다. 황제가 남경에 있는 궁녀를 부를 때, 최씨는 병으로 오지 못하고, 난이 일어나 궁인을 거의 다 죽인 뒤에 올라왔으므로,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한씨(韓氏)는 난이 일어났을 때 빈 방에 가두어 두고 여러 날 동안 음식도 주지 아니하였는데, 문을 지키던 환자가 불쌍히 여겨 때때로 먹을 것을 문안에 넣어 주었으므로 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몸종은 모두 잡혀서 죽고, 유모 김흑(金黑)도 옥에 들어갔는데, 사건이 끝난 뒤 특사되었다. 처음에 황씨가 북경에 가기 전에 형부 김덕장(金德章)이 황씨의 거처하는 방 창문 밖에 앉아 있었다. 황엄(黃儼)이 이것을 보고 크게 성을 내어 꾸짖었다. 북경에 들어갈 때 도중에서 복통이 일어났는데, 의원이 여러가지 약을 써도 아무 효험이 없고, 김치국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엄이 원민생(元閔生)에게 그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민생이 담가 만드는 법을 자세히 말하니, 엄이 얼굴빛을 변하면서 이르기를,

“사람의 살을 먹고 싶다고 한다면 내가 다리를 베어서라도 바치겠으나, 이러한 황무지에서 어떻게 그런 물건을 얻을 수 있느냐.”

하였다. 황씨의 복통은 낫지 아니하여 밤마다 몸종의 손으로 그 배를 문지르게 하였는데, 어느날 밤에 소변할 때에 음부에서 한 물건이 나왔는데, 크기가 가지만한 가죽으로 싼 살덩이였다. 몸종이 칙간에 버렸으나, 일행의 여러 여비가 모두 알고 소문을 냈다. 또 황씨의 몸종이 비밀히 말하기를,

“당초떠날 때에 덕장이 나무 빗 한 개를 준 일이 있다.”

하였으나, 황제의 사신은 모두 모르는 일이었다. 황제가 황씨의 처녀 아님을 힐문하니, 그제야 이르기를,

“일찍이 형부 김덕장의 이웃에 있는 조례(?隷)와 간통하였다.”

하였다. 황제가 성을 내어 우리 나라를 문책하려고 칙서까지 작성하였는데,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던, 궁인 양씨(楊氏)가 이 사실을 알고 한씨에게 그 연고를 말하였다. 한씨가 울면서 황제에게 애걸하기를,

“황씨는 집에 있는 사사 사람인데, 우리 임금이 어떻게 그것을 알리오.”

하니, 황제가 감동하여 한씨에게 명하여 벌을 주게 하였는데, 한씨가 황씨의 뺨을 때렸다. 이듬해 태종 18년에 황제가 보낸 선재(善才)가 우리 태종에게 말하기를,

“황씨는 성질이 험하고 온화한 빛이 없어, 꼭 전생에 몹쓸 짓을 한 숙채(宿債)를 지고 태어난 여자 같다.”

하였고, 세종 5년에 나온 사신 해수(海壽)는 임금에게 이르기를,

“황씨가 도중에서 복통이 심할 때, 우리들이 보면 조선말로 배가 아프다 하고 부끄러운 빛을 뚜렷이 띠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였다. 황제가 죽자 궁인(宮人)으로 순장(殉葬)된 자가 30여 인이었다. 죽는 날 모두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음식이 끝난 다음 함께 마루에 끌어 올리니, 곡성이 전각을 진동시켰다. 마루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평상을 놓아 그 위에 서게 하고, 그 위에 올가미를 만들어 머리를 그 속에 넣게 하고 평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어져 죽게 되었다. 한씨가 죽을 때 김흑(金黑)에게 이르기를,

“낭(娘)아 나는 간다. 낭아 나는 간다.”

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곁에 있던 환자가 걸상을 빼내므로 최씨와 함께 죽었다. 여러 죽는 자가 처음 마루에 올라갈 때, 인종(仁宗)이 친히 들어와 고별하자, 한씨가 울면서 인종에게 이르기를,

“우리 어미가 노령이니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니, 인종이 분명히 허락하고, 한씨가 죽은 다음 김흑을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궁중의 여러 여수재(女秀才)들이 이르기를,

“근일 어여(魚呂)의 난은 옛날에도 없던 큰 일이다. 조선국은 임금이 어질어서 중국 다음갈 만하고, 또 옛 서적에 있는 말인데, 처음에 불교가 여러 나라에 퍼질 때 조선이 거의 중화(中華)가 되려고 하였으나, 나라가 작기 때문에 중화가 되지 못하였으며, 또 요동 이동이 옛날에 조선에 속하였는데, 이제 만일 요동을 얻는다면 중국도 항거하지 못할 것이 틀림 없는 일이다. 이러한 난을 그들에게 알릴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인종이 윤봉(尹鳳)을 불러 묻기를,

“김흑을 돌려보내고자 하나, 근일의 사건을 누설할 염려가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니, 봉이

“사람마다 제각기 마음이 있는 것인데, 소인이 어찌 감히 알겠습니까.”

하였다. 김흑을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특히 공인(恭人)으로 봉하였다. 처음에 황제가 왕씨(王氏)를 총애하여 황후로 삼으려고 하였는데, 왕씨가 죽게 되자, 황제가 크게 슬퍼하고 상심하여, 그 후의 처사가 모두 빗나가, 형을 집행함이 참혹하였다. 어여(魚呂)의 난을 한참 처리할 때, 벼락이 봉천(奉天)·화개(華蓋)·근신(謹身) 세 전(殿)에 떨어져 모두 타버렸는데, 궁중에서 모두 기뻐하기를,

“황제가 반드시 천변을 두려워하여 주륙(誅戮)을 그치리라.”

하였으나, 황제는 강계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주륙을 행하기를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뒤에 윤봉이 사신으로 와서 대강 줄거리를 전하고, 김흑이 돌아온 뒤 그 자상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원전】 2 집 632 면

【분류】 *외교-명(明)

 

 

--------------

태종 034 17/08/06 (기축) 001 / 사신 황엄 등이 처녀 한씨 등을 데리고 돌아가다

--------------

 

사신 황엄(黃儼)·해수(海壽)가 한씨(韓氏)·황씨(黃氏)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한씨의 오빠 부사정(副司正) 한확(韓確), 황씨의 형부 녹사(錄事) 김덕장(金德章), 근수(根隨)하는 시녀(侍女) 각 6인, 화자(火者) 각 2인이 따랐다. 길 옆에서 보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원전】 2 집 181 면

【분류】 *외교-명(明)

 

태종 034 17/12/20 (신축) 001 / 노귀산·원민생 등이 북경에서 돌아와 아뢰다

-------------------

 

노귀산(盧龜山)·원민생(元閔生)·한확(韓確)·김덕장(金德章)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다. 원민생이 아뢰었다.

 

“지나간 10월 초8일에 황씨(黃氏)·한씨(韓氏)가 통주(通州)로부터 먼저 들어가고, 신 등은 초9일에 북경에 들어가서 10일에 조현(朝見)하니, 황제가 신을 보고 먼저 웃으며 선유(宣諭)하기를, ‘너희들이 왔구나. 황씨가 약을 먹었느냐?’ 하기에, 원민생이 대답하기를, ‘노중에서 병이 심하여 지극히 걱정하였습니다.’ 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국왕이 지성으로 보내어 왔으니, 참 어려운 일이다. 한씨 여아(女兒)는 대단히 총명하고 영리하다. 네가 돌아가거든 국왕께 자세히 말하라.’ 하고 한확을 광록 소경(光祿少卿)으로 삼고 물건을 대단히 후하게 주고, 황씨·한씨 두 여자의 집에 금은(金銀)·채백(綵帛) 따위의 물건을 주었습니다.

 

11월 초2일에 하직하였더니, 황제가 육선재(陸善財)에게 이르기를, ‘노중에서 사람을 보내어 알리지 않으면, 국왕이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실례하지 말고 상사(賞賜)를 교부[交割]하고 하루 이틀 머물러서 포마(鋪馬)가 먼저 오고 다른 사람은 뒤따라 오라.’ 하고, 원민생에세 이르기를, ‘너의 나라에 이르러서 육선재가 예를 행할 때에 육선재로 하여금 실례하지 말게 하라. 너는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세종 036 09/05/01 (무자) 004 / 진헌할 처녀로 간택된 한영정의 막내딸이 혼수로 준비했던 재물을 나눠주다

---------------------

 

처녀 한씨(韓氏)는 한영정(韓永?)의 막내딸이다. 맏딸은 명나라 태종 황제의 궁에 뽑혀 들어갔다가, 황제가 죽을 때에 따라 죽었으므로,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아뢰었으므로, 와서 뽑아 가게 되었는데, 병이 나게 되어 그 오라비 한확(韓確)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누이 하나를 팔아서 부귀가 이미 극진한데 무엇을 위하여 약을 쓰려 하오.”

 

하고, 칼로 제 침구(寢具)를 찢고 갈마두었던 재물을 모두 친척들에게 흩어 주니, 침구는 장래 시집갈 때를 위하여 준비했던 것이었다.

 

【원전】 3 집 71 면

【분류】 *외교-명(明)

 

서원군(西原君) 한한(韓?)이 와서 아뢰기를,

“신이 이제 성절사(聖節使)로 북경(北京)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성절사가 반드시 사사로이 바치는 물건을 가져갔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합니까?”

하니, 승정원(承政院)에서 아뢰기를,

“사사로이 바치는 것은 오로지 한씨(韓氏)17498) 를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한씨가 이미 죽었고, 전에도 사사로이 바치는 물건을 바치지 않았으니, 그만두게 하소서.”

하므로, 대신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한명회(韓明澮)·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가 의논하기를,

“한씨가 이미 죽었으니, 사사로이 바치는 물건은 가져갈 것 없겠습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가 의논하기를,

“이제 한씨가 이미 죽었고, 지난해 성절사 한찬(韓?)이 사사로이 바칠 것을 가지고 갔으나 바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이제 한한이 갈 때에 가져간들 무엇에 쓰겠습니까? 한씨의 족친을 들여보내는 것은 성지(聖旨)가 있었다고는 하나, 전에는 정동(鄭同)에게서 나왔고, 이제는 또 정곡청(鄭谷淸)17499) 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재상(宰相)을 차출하여 보내더라도 반드시 뒤에 해로울 것이 없을 것이니, 한한을 보내지 말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사사로이 바치지 말라.”

하였다.

【원전】 11 집 133 면

【분류】 *외교-명(明)

 

 공신부인은 남편 선덕제 사후에도 정통제(영종), 경태제(대종), 성화제(헌종) 등 57년간 4대의 황제를 섬기다가, 1483년(조선 성종 14년, 명나라 성화 19년) 음력 5월 18일 병으로 인해 향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녀가 죽자 성화제는 매우 슬퍼하여 태감 왕거(王?)를 보내어 백금(白金)과 옷감 등을 하사하고, 시호를 공신(恭愼)이라고 하였다.  이때 명나라 황태후를 비롯한 여러 황실에서 그녀에게 조의를 표하고, 이 해 음력 6월 21일 북경 서쪽 향산(香山)에 장사를 지냈다.

 

세종 042 10/10/01 (기묘) 004 / 중궁이 경회루에서 한씨에게 전별연을 베풀다

------------------------

중궁(中宮)이 경회루(慶會樓) 아래에서 한(韓)씨에게 전별연을 베풀었다.

【원전】 3 집 147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세종 042 10/10/04 (임오) 001 / 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떠나다

----------------------------

세 사신이 한(韓)씨를 모시고, 화자(火者) 정선(鄭善)·김안명(金安命)을 인솔하고서 해청(海靑) 1연(連), 석등잔석(石燈盞石) 10개를 가지고 돌아가니, 임금이 모화루(慕華樓)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보내고, 진헌사(進獻使) 총제(摠制) 조종생(趙從生)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光祿寺少卿) 한확(韓確)이 함께 갔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士女)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永樂宮人)이 되었다가 순장(殉葬)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生送葬)이라 하였다.

 

【원전】 3 집 147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무역(貿易)

 

 

세종 044 11/04/12 (정해) 002 / 한확이 일곱 명의 여자들이 주는 서신을 가지고 오다

-------------------------------

소경(少卿) 한확(韓確)이, 화자(火者) 백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 등 일곱 명의 여자(女子)들이 주는 서신(書信)을 가지고 왔는데, 모두 서신과 깎은 머리털을 겹주머니에 갈무리하였다. 서신의 사연(辭緣)은 모두 고생하면서 지내며 생활한다는 뜻을 서술(敍述)했으므로, 어버이와 형제들이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평생토록 상견(相見)할 것은 다만 이 머리털 뿐이다.”

라고 하니, 좌우의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울며 크게 한숨을 지었다.

 

【원전】 3 집 175 면

【분류】 *외교-명(明)

 

 Home >열람(왕대) >세종실록 >세종 17년 >세종 17년 4월    

세종 068 17/04/26 (정묘) 005 / 처녀 종비 김흑이 태후와의 일을 회고하다

--------------------------------

김흑(金黑)이 말하기를,

 

“한씨(韓氏)가 죽은 뒤에 날마다 태왕 태후(太皇太后)를 모시었는데, 대우가 대단히 후하고 하사하여 주시는 것이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태황태후께 여쭈기를, ‘늙은 것이 은혜를 입은 것이 대단히 후하온데 다만 고향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였더니, 태후가 허락하고 돌아가기를 명하였습니다. 인하여 집찬비(執饌婢)와 창가비(唱歌婢)를 아울러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더니, 태후가 말하기를, ‘와서 있는 것을 처음부터 알지 못한다.’고 하시고, 인하여 한꺼번에 돌려보내기를 명하고, 하직하는 날에는 태후께서 김흑의 손을 잡고 울면서 작별하였습니다.”

하였다.

 

김흑이 받은 고명(誥命)의 말에 이르기를,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조유(詔諭)하노라. 짐은 생각건대, 제왕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하는 자는 반드시 어버이가 사랑하던 사람에게 은혜를 미루어 미치게 하고, 만일 사랑하던 사람에게 일찍이 보육(保育)의 근로(勤勞)가 있는 자에게도 또한 은혜를 미루어 미치게 하나니, 인(仁)의 지극함이요 의(義)의 융숭함이다. 슬프다, 너 김씨는 고 강혜 장숙 여비(康惠莊淑麗妃)의 유모(乳母)이다. 여비(麗妃)는 공손히 선제(先帝)를 섬기어 현숙(賢淑)하다고 일컬었는데, 육어(六御)가 승하(升遐)하자 몸을 버리어 순종하였으므로, 이미 봉작(封爵)과 시호(諡號)를 더하여 어진 행실을 표하였는데, 네가 옛날에 보육의 근로가 있음을 생각하여, 이제 특별히 봉하여 공인(恭人)을 삼는 것이니, 이 광영(光榮)을 생각하여 공경하여 게을리 하지 말라. 홍희 황제(洪熙皇帝)의 명령이다.”

 

하였다.

 

【원전】 3 집 626 면

【분류】 *외교-명(明) / *신분(身分)

 

 

세종 068 17/05/14 (을유) 004 / 한씨의 유모 김흑 등에게 음식을 먹여 보내다

--------------------------------

한씨(韓氏)의 유모 김흑(金黑) 등을 불러 보고 나서 음식을 먹여 보내기를 명하니, 김흑 등이 각각 능라(綾羅)와 견단(絹段)을 바치므로, 회답으로 쌀·콩·면포를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원전】 3 집 627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 *재정-진상(進上)

 


creat date 1996year~ south castle. All rights reserved.
record, paintings, images, and graphics and sound,or etc
maejoung spir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