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후기에 솔거노비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
사학자
이세영의 논문에 의하면 조선후기 지주제의 발전과 농민층 분화 속에서 협호의 발생과 성격을 설명하였다. 우선, 협호는 19세기에 걸친 농민층 분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몰락농민으로 충원되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협호의 성격은 主戶인 兩班土豪와의 관계에서 兩班土豪家에 투탁하거나 강점 포섭되어 그들의 직영지경영에 동원된 예속적 노동력(奴 使喚과 다름없이 役使시키고는 있었지만, ‘양반-솔거노비’의 관계와 같은 인신적 지배관계는 아닌), 借地․借家의 佃戶農이면서 雇役的 노동을 강요받는 종속소작인, 그리고 주가와의 예속관계를 탈피해가는 雇工 ․ 日雇 등의 초기 임노동층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주로 이해하였다.-----조선후기 挾戶의 존재 형태와 노동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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