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신-----------벽파정의 시운에 화답하여 눈물을 닦고 쓰다. 먼저 두 분의 시를 기록하는 바이다〔和碧波亭韻抆淚書之先錄二詩〕
우주는 예로부터 영원한 것이요 / 宇宙由來遠
인생이란 본래 덧없는 것이니 / 人生本自浮
일엽편주에 몸 싣고 여기서 떠나가 / 扁舟從此去
머리 돌리면 정히 아득하기만 하리 / 回首政悠悠
이상은 충암(冲庵) 선생의 시이다.
외론 충정은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 孤忠輕性命
짧은 노는 멋대로 뜨거나 잠기거나 / 短棹任沈浮
해는 지고 방주는 하 멀기만 하여라 / 日落芳洲遠
넋을 부르려니 뜻이 더욱 아득구려 / 招魂意轉悠
이상은 규암(圭庵) 선생의 시이다.
두 분 선생은 하늘 위에 계시고 / 二公天上在
외론 나그네는 바다에 떠 있는데 / 孤客海中浮
다행히 오늘 죽는 건 늦추어졌으나 / 幸緩今朝死
앞길이 아직도 멀기만 하구려 / 前途尙自悠
벽파정(碧波亭)의 …… 바이다 :
벽파정은 전라남도 해남현(海南縣) 남쪽 30리쯤에 있던 정자로 벽파진(碧波津)과 함께 진도(珍島)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벽파정의 시운(詩韻)이란 바로 아래의 ‘두 분의 시’를 지칭하는바, 충암(冲庵) 김정(金淨),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의 시를 가리킨다. 김정은 중종(中宗) 연간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처음 금산(錦山)에 유배되었다가 이어 진도로 이배(移配)되었고 다시 제주(濟州)에 안치되었다가 그 후 끝내 사사(賜死)되었다. 그리고 송인수는 명종(明宗) 초기 을사사화(乙巳士禍) 직전에 벼슬이 이조 참판에 이르렀으나 윤원형(尹元衡), 이기(李芑) 등의 미움을 사서 전라도 관찰사로 폄관(貶官)되었고, 그 후 을사사화 때 끝내 사사되었다. 그렇다면 김정은 진도로 이배되는 도중에 해남의 벽파정을 경유했고, 송인수는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 중에 이곳 해남을 순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