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집 제2권 / 시(詩)
옥주이천언〔沃州二千言〕
신이 유배된 지 이미 반년이 되었는데 / 臣謫旣半載
조정 의논은 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 廟議當盡誅
왕께선 혹은 유배하고 혹은 죽이라고 / 命或竄或戮
삼십삼 인의 처벌을 금오에 명하였네 / 三十三金吾
나에겐 분에 넘치게 죄보다 형량을 줄여 / 誤從末減科
옥주로 옮겨서 구금하였도다 / 移爲沃州俘
성상의 은혜가 하늘 같아서 / 聖明恩如天
잠시나마 살아남게 해 주셨기에 / 無死於須臾
동복아 너는 삼가 한탄하지 말라 하고 / 僮汝愼毋咨
허둥지둥 그날로 말을 몰게 했는데 / 遑遑卽日驅
종유했던 이들은 모두 먼 이별의 자리에서 / 還往多遠別
얼굴 가리고 울며 길이 탄식한 이도 있었지 / 有掩涕長吁
누가 알았으랴 관청의 예전 하례들도 / 誰知府隷舊
나를 꾸짖지 않고 되레 받들어 아첨할 줄을 / 不訶却獻諛
그들은 실로 큰 욕심을 품고 있었고 / 渠實懷溪壑
나 역시 오랫동안 호구를 의뢰했지만 / 吾口亦久餬
어찌하여 풍년을 만나서도 / 胡爲遇豐稔
무호의 죽과 밥을 재차 빌겠는가 / 再丐追蕪滹
내가 앞서 한 말은 농담이거니 / 前言戱之爾
내가 너를 무함한다고 노여워 마오 / 勿怒爲我誣
멀리멀리 큰 바닷가를 따라서 / 迢迢滄海沿
서둘러 동서남북 밭둑길을 넘어와서 / 肅肅阡陌踰
머리 돌려 귀덕군을 바라보니 / 回首歸德軍
흰 구름 아래 어버이를 부를 수가 없구려 / 白雲不可呼
잠시 큰 나무 밑에 멈춰 서서 / 暫止大樹下
장흥 가는 길을 돌아보노라니 / 顧眄長興途
말을 달려 가는 자가 그 누구인지 / 走馬者誰子
당당하기도 해라 훌륭한 선비여 / 堂堂乎好儒
그 기색은 참으로 두려움이 없었고 / 其色信不惕
그 말 또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네 / 其言亦不拘
나는 인하여 시름겨이 탄식하기를 / 予因愀然歎
이렇구나 선생의 우활함이여 / 有是子之迂
이런 언행 때문에 요괴한 무리들이 / 爲此怪鬼輩
충동질하여 우리 무리에 죄를 얽는 거라 하고 / 激以累吾徒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한번 손뼉을 치고 / 相看一撫掌
운명인 걸 어찌하냐고 매양 말했었지 / 每說命矣夫
함께 길을 갈 땐 자못 나를 의아해하여 / 同行頗相訝
물어보려다 다시 머뭇거리곤 하였고 / 欲問還囁嚅
서회와 같은 은근한 정으로 / 殷勤徐晦情
사 온 술이 아닌 가양주로 나를 대접도 했네 / 飮我以非酤
그대에게서 받은 건 반드시 선으로 권면함인데 / 承君必責善
나는 그대에게 그 무엇을 주어야 할꼬 / 贈之有何圖
다음 날 아침 석별의 말을 나누고 나올 땐 / 明朝出別語
마음속 깊이 참담하여 기쁘지 않았었지 / 深懷慘不娛
선비란 의리를 이로움으로 삼는 것인데 / 士以義爲利
어찌 재난 곤경에 빠진 자를 위로하지 않으리오 / 豈不慰泥塗
끝없이 광활한 큰 바다만이 / 漫汗大瀛海
하늘과 딱 닿았으니 끝진 곳이 그 어드메인고 / 黏天安所隅
눈을 부릅뜨고 멀리 저 언덕을 바라보니 / 決眥得彼岸
참으로 사발을 엎어 논 듯한 한 점의 섬이로다 / 一點眞覆盂
그 중간에 자리한 여러 작은 섬들은 / 其間數小嶼
하도 자잘하여 더듬어 찾을 수도 없었는데 / 細瑣不可摹
혹은 쪽머리만큼 볼록 나온 것도 있고 / 或出若䯻鬟
혹은 바가지처럼 움푹 들어간 것도 있었고 / 或沒若匏瓠
만 이랑 바닷물이 창공에 넘실거리매 / 積水萬頃空
혹 고래 악어가 쫓아오진 않을까 생각했었네 / 但想鯨鼂趨
이때 뱃사공이 손짓하여 부르며 말하기를 / 招招三老言
벗도 없는데 공은 누구를 기다리시오 / 無友公何須
오늘은 다행히 바다가 잔잔하니 / 此日水國安
공의 항해에 걱정 없음을 축하한다 하고 / 賀公行無虞
나를 재촉하며 닻줄을 풀어 배를 저어 갈 제 / 催我放纜進
배 두 척은 마치 두 마리 물새 같았지 / 二航如鵜鶘
남쪽을 가리키며 그곳은 탐라도이고 / 指南曰耽羅
조금 동쪽으로 가면 왜놈들이 사는 곳인데 / 稍東居倭奴
순풍을 만나면 하룻저녁에 닿을 수 있고 / 風便一夕抵
서쪽으로 떠가면 그곳이 바로 중국이라네 / 西漂卽上都
나는 이때 사색에 젖은 듯 묵묵히 있었으니 / 我時黙若思
여울머리의 어리석은 자가 될까 싶어서였지 / 恐被瀧頭愚
거센 물결은 서로 우당탕 쳐 대고 / 浪驚自豗蹙
장독 어린 안개는 항상 축축이 끼어 있어 / 霧毒常沾濡
풍겨 오는 비린내는 배 속까지 침범하고 / 熏腥觸肝肺
식은땀은 살갗에 줄줄 흘러내리었네 / 冷汗流肌膚
오계의 험난한 곳을 정벌하는 것 같기도 하고 / 如征五溪險
오월에 노수를 건너는 것 같기도 했으니 / 如渡五月瀘
어찌 종군의 뜻이 있으리오마는 / 詎有終軍志
돌아갈 땐 응당 수를 버려야겠네 / 歸期應棄繻
내가 어린 시절 꿈속에서 탔던 것은 / 予幼夢托乘
용도 아니요 추호도 아니었는데 / 非龍亦非貙
날아올라 천궁엘 들어가려 했지만 / 飛騰入金闕
고삐가 없거니 어찌 멍에인들 있었으랴 / 無轡寧有軥
그것이 배로 변화하여 이것을 타고 바다에 떠서는 / 化作船浮洋
사방을 돌아보고 놀라 허둥지둥하다가 / 四顧還瞿瞿
무하유의 시골에 정박하고 보니 / 泊乎無何有
내 몸은 마치 한 개의 쌀겨만 같아 보였네 / 身如一米稃
기해년에 금강산에 올라서는 / 己亥上楓岳
동해 바다의 물거품을 내려다보았고 / 東溟瞰漚泭
삼 년 뒤에 다시 더 깊이 탐색해 보니 / 三年復窮探
거센 파도란 게 고작 신 등에 뿌릴 정도라 / 崩濤但濺絇
어릴 적의 몽조에 부응하기엔 부족하더니 / 未足應其讖
지금에야 이 바다가 몽조와 부절을 맞춘 듯하구나 / 乃今方合符
인생의 득실이 정해짐이 / 人生得喪定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 夫豈偶然乎
하늘은 내가 워낙 우직하여 / 天其以我戇
옛것을 믿고 끝내 변치 않기 때문에 / 信古終不渝
짐짓 험난한 곳에서 죽게 한 것이니 / 故令死于險
순히 받아들여야지 내 어찌 두려워하랴 / 順受吾何惥
홀로 서서 한번 눈을 쳐들어 보니 / 獨立一擧眸
고상한 흥취가 또한 즐거웁구려 / 高興亦可愉
오래이어라 황제 헌원씨여 / 遐哉軒轅氏
함지는 정호에 전해 오거니와 / 咸池來鼎湖
다시 일어나 순 임금을 외쳐 부르노니 / 更起叫虞舜
소음은 창오에서 그치고 말았는데 / 韶音輟蒼梧
상강 물결은 서로 쳐 대어 솟구치고 / 湘流相蕩潏
회수 물결도 다투어 일어나는 듯하리 / 淮波競揚揄
사해 밖까지 맘속으로 곰곰이 찾아보고 / 冥搜四海外
아무리 그리워해도 지금은 그런 이가 없구려 / 懷之今則無
성인께서는 무슨 안 될 것이 있어 / 聖人何不可
반드시 이 떼를 타고자 하였던가 / 必欲爲此桴
황하 근원 끝까지 간 저 한나라 사신의 / 窮源彼漢使
근원 쫓아간 떼는 참으로 잗단 것이었네 / 逐槎諒區區
어찌 차마 두 사당에 기도할 수 있으며 / 豈忍禱二祠
어찌 감히 두 구슬을 청할 수 있으랴 / 豈敢請兩珠
돛이 절반쯤 날리는 순풍만 얻으면 / 只得半帆風
살살 바람 쐬며 삼오에 도달하리니 / 逍遙達三吳
경쾌히 달려 치이자피의 행로를 뒤따라 보고 / 翩翩追鴟夷
아득한 오강의 순채 농어도 먹을 것이요 / 渺渺就蓴鱸
반도를 따서 먹을 수도 있고 / 蟠桃摘可啖
큰 자라는 낚아서 요리할 수도 있으리 / 巨鰲釣可屠
소매를 높이 쳐들면 부상에 걸 수 있고 / 手高掛扶桑
낚싯대로는 바다 깊이 산호를 헤칠 수 있네 / 竿深拂珊瑚
멀리 생각건대 어찌 박아하지 않은가 / 緬惟豈博雅
운몽택을 가슴속에 삼켰으니 말일세 / 雲夢胸中輸
백대가 빠르기 흡사 순식간이요 / 百代急瞬息
만사는 갈대의 얇은 막보다 가볍다오 / 萬事輕葮莩
나는 평생에 이 놀이를 장하게 여겨 / 平生壯此遊
장사치 호인처럼 머무름도 안 부끄럽네 / 不恥留賈胡
지척에서 천둥 비가 몰아가고 / 咫尺雷雨過
신령은 시원스레 바람을 몰아오니 / 神靈颯吹欨
풍이의 집은 하 깊숙도 하건만 / 馮夷宅舍幽
다니는 자들은 사통팔달의 길처럼 여겼네 / 行者視通衢
문득 생각하니 부르는 글을 지어 불러 모아서 / 翻思作招文
그대들에게 천금 같은 박을 주고 싶구나 / 與爾千金壺
이끗만 보고 위태로움을 보지 못하니 / 見利不見危
그 얼마나 무고하게 물고기 신세가 되었던가 / 其魚幾不辜
해적들이 인하여 몰래 발동하여 / 海寇因竊發
포구 가득 피가 흘러넘쳤네 / 滿浦血糢糊
쫓겨난 나그네는 또한 무슨 마음이었던고 / 逐客亦何心
몹시 슬퍼 공연히 수염 배배 꼬며 시를 읊었지 / 惻惻空撚鬚
한가히 삼백 리를 노 저어 가니 / 閑櫓三百里
우뚝한 정자가 내리 굽어보고 있는지라 / 有亭俯臨于
올라가서 마음껏 멀리 조망하노라니 / 陟焉恣遠眺
쓸쓸한 풍경이 자못 육지와 달랐고 / 蕭蕭風景殊
문미 사이에 두 시가 남겨져 있어 / 楣間留二詩
읽으려고 하자 먼저 슬픔이 북받치었네 / 欲讀先邑於
내 혼백이 오래도록 이산되었으니 / 魂魄久離散
오직 천제가 무양을 보내기만 바랄 뿐인데 / 惟帝其遣巫
내가 어느 겨를에 남을 슬퍼한단 말인가 / 是何暇哀人
자신의 고독함을 헤아리지 못함이로다 / 不量己之孤
이른 석양에 고기잡이 노래는 들리는데 / 漁歌未斜陽
술집 깃발 없으니 어디서 술을 산단 말인가 / 無帘何處沽
서쪽으로 가서 옛 유적을 찾아보고는 / 西邁訪遺跡
옛일에 느꺼워 길이 탄식하였네 / 撫事長烏虖
바다는 빙 둘려서 참호가 되어 있고 / 環海以爲塹
절벽을 등져서 성곽으로 삼았는지라 / 負崖以爲郛
들어가면 움 속처럼 인식하였고 / 入則認窖窨
나갈 땐 개구멍을 꿰 다니듯 하였네 / 出則謀穿窬
무력을 그치지 않으면 자신을 태우게 되지만 / 不戢將自焚
우리의 도끼와 몽둥이도 또한 부서뜨렸지 / 亦缺我斨殳
오른편으로 우수영을 바라보니 / 右望右水營
조그만 공관이 언덕 모퉁이에 있는데 / 小館依丘堣
어떤 이가 말하길 흩어진 군졸을 다 모아도 / 人言盡散卒
부추의 작란을 방어하기 어렵다 하네 / 蓋難防負芻
백성들은 험한데 그들의 고혈을 긁어내고 / 民嵒剝膏血
권세가들은 수많은 조운으로 민폐를 끼치니 / 權門弊舳艫
어찌 국가를 좀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 孰能不蠹國
아 이미 소인들에게 큰 벼슬을 시켰도다 / 噫噫仕已膴
금골산이 가까워 오자 갑자기 기뻐서 / 乍喜金骨近
나약한 마음 사라지고 용기가 솟구치었네 / 聳勁非退懦
고운 놀 사이에 은순들이 꽂혀 있는 듯 / 霞間揷銀筍
이슬 내린 아래 옥부용이 피어 있는 듯 / 露下開玉芙
외론 봉우리는 목욕하던 붕새가 몸을 내논 듯 / 孤峯挺浴鵬
먼 산굴들은 술 마시는 손을 맞아 온 듯하네 / 遠岫擯含醹
한스러운 건 금골산 꼭대기에 올라서 / 恨不臨絶頂
한밤중에 향을 살라 보지 못함이로다 / 半夜焚香爐
서책 쟁여 둔 우혈을 탐사하노라니 / 藏書探禹穴
그 위에 어미 잃은 봉황 새끼가 있어 / 上有無母雛
서도를 물고 하늘에서 내려와 / 銜圖自九天
쌍부를 따라서 서도를 군왕께 바치길 바랐네 / 獻瑞從雙鳧
내 깊은 소망이 늘 여기에 있었기에 / 深衷釋在玆
오래 머무노라니 내 말이 지쳐 버렸네 / 久駐我馬瘏
여러 항구엔 아침저녁 밀물 썰물이 통하고 / 衆港潮汐通
실낱같은 산맥들은 서로 굽어 돌았는데 / 縷脈相廻迂
한 중앙엔 흙이 쌓이지 않았고 / 中央不合土
이따금 돌화살만 한 산맥도 있었네 / 往往大如砮
나락논은 진 땅을 인해서 만들었고 / 稻畦因淤泥
기장밭은 높은 땅을 차지했으되 / 黍地占棱柧
비습한 때문에 맛 좋은 샘물은 없고 / 以濕無甘泉
척박한 때문에 엿 같은 씀바귀도 없다오 / 以瘠無飴荼
만일 수재 한재만 거듭되지 않는다면 / 水旱苟不荐
농사는 간편하여 조세도 납부할 만하고 / 事簡堪出租
뽕과 삼과 목면이 떨어지지 않아서 / 不乏柘麻綿
거친 삼베나마 길쌈하여 바칠 만도 하네 / 粗亦征布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