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HTML5 Audio Player, powered by http://amazingaudioplayer.com

 

先系 이야기
매화---조선전기
난초---조선후기
국화--外家
대나무---master
my story and that or what not

A!~~~MAEJOUNG!------참의공파 先系 이야기(한진휘 論)

참의공 장손가의 이야기..........2

관리자 2025.03.18 17:55 조회 수 : 48

21세(범제范齊:甲戌生1634 父壽琦 壬子生1612)로 其後하였으며, 父親 유존惟存께서 癸亥靖亂에 당대의 동성 5촌 까지 律文을 물으니 被禍되자 19세 韓恊戊子生1588) 先祖는 과거에 나갈수 없었는데. 외가(洪德良:惟存의 丈人)할아버지의처가(남양홍씨 恥齋 洪仁祐先生)문하 에서 全心全力하여 경학을 공부 하였으며 大君師傅 가 - 14 되었다. 光海靖亂(廢母殺弟)에 여주 장화로 隱居하여 평생을 보냈으며 자손에게 경계하는 말씀을 하시길 글을 읽더라도 벼슬에 이름을 올리지 말라 하셨다 행록 에 사적이 기록 되어 있으며 할아버지의 여주(장화)으로 세거를 이루시어 문중의 세계를 이루었으며, 자(字)화숙(和叔) (號)죽정(竹亭) 무자(戊子)生 1588년선조 21~1668년 현종 9년 戊申年 正月十一日 81세로 卒 하셨는데, 1910년 순종 3년 8월 25일 대군(大君)의 사부(師傅) 한협(韓協)은 학문이 뛰어나고 지조와 행실이 순결하고 정2품 규장각 제학에 추증하며 시호(문목文穆:근학호문勤學好問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한 것을 문(文)중심견모中心見貌 확고한 주관을 얼굴에 드러낸 것을 목(穆))를 내리는 은전을 시행하라 命 하였다. 배위(配位)광주김씨(光州金氏)父식남(植南) 1593년宣祖26年계사(癸巳)生이며, 9월25일 卒하시어 도곡리 장동(藏洞(자좌子坐)에 합조(合兆)이다. 早孤不求科擧專治經學天授大君師傅隱驪州長華終焉戒子孫不書職御以其不就也事蹟詳行錄 ※韓致良의 丈人은 고령인(高靈人)신경함(申景涵) 자(字)양백(養伯)이며, (宣祖5)1572년 임신생(壬申生)출생. 配位 居昌愼氏 副護軍 사룡(士龍)1549의 따님이며 거주지 한성(京)인데, 父(부)는 신정(申湞)이다. ⁕신경함(申景涵)의 高祖父신공섭(申公涉1481)은 配位 居昌愼氏 左議政신수근(愼守勤)의 따님으로 端敬王后의 언니이며, 한충인(韓忠仁)의 외손주 사위 이다. 21세(범제范齊甲戌生1634 협의손자壽琦)(숙종(肅宗) 1년(167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繼後 하여 여주에 정착 하여 세거를 이루었으며 고향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으로 歸鄕하지 못하고 이후 여주(양평)으로 세거를 이루게 되었으며 17세(胤宗:生父鯤의2子)의 형(胤明鯤의1子:선조사부)의 행적에서 보면 더욱더 귀향하지 못하였으며 선조의 고향의 선계를 追錄 할뿐이다. 24세 韓孝永 선조부터 양평 으로 이거 하여 사천문중으로 자리 잡았다. ▪한충인(韓忠仁)선조의 仨子 구암 문중의 선계는 14세 兵使公 韓忠仁(한충인) 3남2녀 15세 訓.謹.謙를 두시었는데 셋째이신 謙(겸1470성종1년推定)할아버지로부터 16세(학유:鶴有) 17세(윤실: 胤實) 18세(응구:應九1571년辛未生) 19세(진관:進官1594년甲午生) 20세(수남:守南1610년庚戌生) 21세 諱 世建(세건1641년辛巳生推定)할아버지의 구암으로 세거를 이 루시어 문중의세계를 이루었으며, 자(字)이중(而仲) 정사(丁巳)生 신유(辛酉)11월17일 졸 하셨으며, 배위(配位)청도김씨(淸道金氏)父천일(千鎰)기미(己未)생 이며 8 월13일 卒하시어 영천군 금호면 구암동 상목산(桑木山(건좌(乾坐)에 합조(合兆)이다. 그렇다면 15세부터 20세까지의 선계 선조님의 세계가 불분명 할까? 15세 겸(謙1470성종1년推定) 할아버지께서는 초배(初配)延日(정서량鄭恕良1453년 癸酉生)의 따님 과 혼인 하였는데 자식이 없자 계배(繼配)判官韓山(이선문李宣文)의따님을 취 하셨는데 무후(无后)로 기록이 되어 있다. (文化柳氏嘉靖譜1565년(명종 20) 간행)타족보 및(고려대학교 중세연구실 인적정보열람 한겸(韓謙)의8고조도) 敦寧譜牒 겸(謙) 할아버지의 生年卒은 모두 감추었다. 1505년 燕山11년9월19일 할아비 및 아재비·조카는 비록 죽었더라도 모두 부관참시(剖棺斬屍)하라 이 일은 율문(律文)에 없는 형벌로 다스린다. 監役으로 계셨던 (謙겸1470성종1년推定)선조께서도 사화를 피하지 못하고 어머니인 이씨할머니께서는 子(謙)의 无後로 생년졸 을 모두 감추었다.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재위 1494∼1506)이 자신의 유흥지에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연산군시대 금표비(燕山君時代禁標碑) 앞면에는 '금표 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處斬)'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금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왕명을 어긴 것으로 보아 목을 참한다는 내용의 비문이다. 살던곳도 빼앗겨 연못으로 만들고 돌아 갈곳도 없이 孫子 학유(鶴有)와 목희도에 숨어 지내셨는데 무오년(戊午年)(1498년)에 嫡子(훈訓)마저 사 화를 피할수 없었고 아드님이신 (겸謙) 마저 세상을 뜨니 사화의 그림자속에 夫君이신 忠仁할아버지 마저 甲子士禍에 絞刑에 돌아가시고. 둘째형 謹할아버지의 조카(鶴有학유)와 고양 목희도(나무드머리:옛 청자기와굽는곳)으로 피해 숨어 지내시다가, 이씨 할머니께서는 마음의 傷處와 恨을 가지시고 졸하시니 1434生推 定~1508년 中宗正德3년 75세 卒이다(묘비참조).



creat date 1996year~ south castle. All rights reserved.
record, paintings, images, and graphics and sound,or etc
maejoung spir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