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頭書名:再校添修淸州韓氏族譜 韓德亮(朝鮮) 編 序:崇禎重甲申(1704康熙)…韓德亮, 跋:皇明萬曆丁巳(1617)…韓赫, 萬曆丁巳(1617)…韓孝仲 子謙无后○韓賁胤譜兼有子鳳云而舊譜父文化 柳譜皆稱无后故今不取容易添入也 監役室韓山李氏判官宣文女无后又女一之曰鄭氏護軍恕良女必前后娶也 ◉자겸무후○청주한씨보(淸州韓氏世譜 1617년 韓孝仲 編纂)에 봉(鳳)이(鳳有) 겸의 아들 이며, 문화유씨보에도 무후라고 기록되어 누구라도 쉽게 첨입 하지 않았 다.(鶴有) 감역을 지냈으며 이씨판관 선문(宣文)의 따님(女)인데 무후(无后)하였다. 또 호군 정서량의 따님이시니 장가 들었는데 前娶이다. 史禍이후 家門의 滅門을 피하기위해 족보에 무후로 1617년 韓孝仲 編纂청주한씨보에 내용을 기록 하였다. 그후 첨입 하지 못하다가 (淸州韓氏族譜 1704년(숙종 30) 韓德亮 編)목판본에(鳳有봉유:有文華早世)는 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며, 次子학유(鶴有)이다. •15세(謙)선조의子 16세(鳳有:봉유.早世일찍이졸함)포천목촌에서 후계를. 16세(학유:鶴有)선조 할아버지의 墓所도 목희도(현 원흥동) 외조모묘(木希道外祖母墓:안동 김씨:김중엄金仲淹 14세 충인:忠仁할아버지의장인 失墓)계시며 지금까지 내유동으로 이장 하지 못하고 영면해 계시다. (謙겸)선조께서는 사화를 피하지못하고 어머니인 이씨할머니께서는 子(謙)의 无後로 생년졸 을 모두 감추었기에 世居地로 의 귀향은 생각지 못하고 사화의 避禍 와 亂 속에 고향은 훗날을 기약 하며 삶을 이어 가기위해 처가인 영천 구암으로 세거를 이루게 되었으며 17세 윤실(胤實)할아버지의 6촌형胤明:宣祖師傅의 행적 에서 보면 더욱더 귀향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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