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韓會(한회)의 後孫
父親 韓忠常. 母親 南陽洪氏(父:洪瑞從)의 첫째 아들로 한회(別坐각 관아에 둔 정ㆍ종오품 벼슬)嫡子세립(世立)无後이며, 次子세건(世建)이며, 丈人은 全義李氏 이심(李諶)이며, 양주 백석면 고령에서 세거한 전성위(全城尉)이완(李梡)의 셋째아들 이신충(李信忠)의 次子이심(李諶)의 次壻(사위)이다.
韓會(한회)선조의 丈人이심(李諶)의 사촌 누이는 큰아버지 충인(忠人)의 繼配全義李氏 이제충의 따님이며 곧 妻家.親家 從姪이다.
1545년乙巳士禍순천박씨문중이 避禍에 두 兄弟 에게도 禍가 미치어(无後절손(絶孫)되었고, 次子세건(世建)후손은 忠順(강화부사)할아버님의 孫(16세韓世弘의4子瓘 양주송산세거) 에서 繼後(계후)하여 왔지만 18세 韓惟赫(훈령도정)과 韓惟奭 두형제를 두었으나 壬辰外亂1592,丙子胡亂1636를 거치며 고향에 갈 수가 있는 근거를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보여진다.
※18세 한유혁(韓惟赫)
공(公)은 관(瓘)의 아들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전사(戰死) 하였다. 선계(先系)와 관작(官爵)을 살필 유록(遺錄)이 없으므로 후일(유록이 나타나길 바람)을 기다린다 라고 되어 있으나, 1623년 광해 말년 정변으로 광해가 페위 되었다. 1628년(인조6) 페위된 광해를 상왕으로 仁城君李珙을 왕으로 옹립 하려는 역모 사건에 양경홍(梁景鴻)등이 홍타이지 후금-여진족 과 연계해 강화도에 정배된 광해를 상왕으로 옵립 하려 했다 하여 피화 되었나 사료 된다. 사촌 한유길(1568년 무과급제자 경기 고양 출생)의 1628년1월~1629년 12월 처형 되었다. 이때에 한유상(韓惟翔윤관 의子) 한유길(韓惟吉윤광 의子) 한유혁(韓惟赫관 의子) 18세 惟자 항렬 가계도를 살펴 보면 사촌형제들의 被禍로 경기 고양 땅으로 귀향하지 못한 계기가 아닌가 사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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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세 韓會(한회)의 後孫 | 관리자 | 2025.06.27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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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훈
![]() | 관리자 | 2025.06.24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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