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집 제2권
길에서 한사형의 시에 화답하다 윤9월이다. 〔道和韓士炯 閏九月〕 한사형의 시에 “밝은 태양은 겹겹 구름 밖에 떠 있고, 황혼 까마귀는 온갖 나무에 깃들었는데, 옷소매 붙잡고 바닷가에 임하여, 눈물 머금어 가을바람에 뿌리노라.
〔白日重雲外昏鴉萬樹中摻袪臨碧海含淚灑秋風〕” 하였다.
성은은 하해 같고 죄는 죽어 마땅하여라 聖恩如海罪當誅
인간 만사에 우졸함이 한탄스럽기만 하네 嘆却人間萬事迂
폐인이라서 위학을 논할 마음은 없거니와 摧廢無心論僞學
숨어 살거니 누가 진우를 찾아 주려 하랴 卷懷誰肯訪眞愚
언덕에 나무꾼이 있음은 아직 의심스럽고 猶疑樵父臨前岸
길에서 전군을 만난 건 이미 부끄러웠네 已媿田君就半途
평생에 충신을 주장함을 진중히 여겼으니 珍重平生主忠信
한순간의 일도 다 내게 달렸음을 알아야지 須知一息盡關吾
한사형(韓士炯) : 자가 사형인 한윤명(韓胤明)을 가리킨다. 그는 조선 중종(中宗) 32년(1537)에 태어나서 명종(明宗) 22년(1567)에 죽었는바, 일찍이 이황(李滉)의 천거로 선조(宣祖) 잠저(潛邸) 시절의 사부(師傅)를 지낸 바 있다. 그 밖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노수신 보다 22세 어리다.
위학(僞學) : 위학이란, 남송(南宋) 시대 간신(奸臣) 한탁주(韓侂冑)가 영종(寧宗) 연간에 조여우(趙汝愚)와 권력을 겨루다가 주희(朱熹) 등 도학자(道學者)들이 모두 조여우의 편이 된 것을 본 나머지, 그가 권세를 잡고 나서는 ‘탐하고 방자한 것이 바로 사람의 진정(眞情)이요, 청렴결백하여 수행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곧 거짓된 사람’이라 하여, 마침내 도학을 위학이라 칭하고 도학을 숭상하던 당시 승상(丞相) 조여우 등 59인을 모조리 파척(罷斥)하고, 주희의 도학에 찬동하는 선비들을 일절 등용하지 말도록 금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위학을 금하는 비(碑)가 없었다고 한 것은 곧 송 철종(宋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한 문인, 학자를 모조리 간당(奸黨)으로 지목하여 조정에서 내쫓고, 뒤이어 문인, 학자 총 309인의 이름을 비에 새겨 세워서 이를 원우간당비(元祐奸黨碑)라 칭하기까지 한 데서 온 말로, 본디 위학에 대한 금비(禁碑)는 없었는데, 여기 저자는 간당비의 고사를 가지고 위학을 금한 데에 전용(轉用)하여 우리 조선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宋史 卷345, 卷474》
진우(眞愚) : ‘참으로 어리석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저자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의하면 “공자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했으니, 그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요, 또 공자가 안자(顔子)를 일러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을 했으되,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 같다.’ 했으니, 안자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라,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도리에 어긋나고 일에 거슬렸다. 그러므로 모든 어리석은 이 중에 나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는 것이다.〔甯武子邦無道則愚, 智而爲愚者也. 顔子終日不違如愚, 睿而爲愚者也. 皆不得爲眞愚. 今余遭有道, 而違於理, 悖於事. 故凡爲愚者莫我若也.〕”라고 하였다. 《柳河東集 卷24》
언덕에 나무꾼이 있음 :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서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 구당협(瞿塘峽)의 어귀에 큰 암석이 우뚝 서 있는 곳을 염예퇴(灩澦堆)라 이르는데, 이 부근은 본래 격류가 극심하여 배가 다니기 매우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송(宋)의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일찍이 부릉(涪陵)으로 유배 가면서 염예퇴를 지날 적에 파도가 거세게 일었는데, 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몰랐으나 유독 정이는 태연하여 조금도 동요하지 않자, 강 언덕 위에서 나무를 하던 사람이 큰 소리로 정이에게 묻기를 “목숨을 버리자고 그러는가, 아니면 도리를 달관하여 그러는가?〔舍去如斯? 達去如斯?〕” 하므로, 정이가 대답을 하려 하였으나 배가 이미 떠나서 대답하지 못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心經附註 正心章》
길에서 …… 부끄러웠네 : 전군(田君)은 송 철종(宋哲宗) 연간의 문신 전주(田晝)를 가리킨다. 자는 승군(承君)이다. 당시 간관(諫官) 추호(鄒浩)가 전주와 서로 친밀한 사이였는데 마침 철종이 황후(皇后) 맹씨(孟氏)를 폐하고 현비(賢妃) 유씨(劉氏)를 황후로 책봉하는 일이 있자, 전주가 혹자에게 말하기를 “지완이 이번 일에 간언을 드리지 않으면 그와 절교할 것이다.〔志完不言, 可以絶交矣.〕”라고 하였다. 지완(志完)은 추호의 자이다. 추호는 과연 황후 폐립(廢立)의 잘못된 처사에 대하여 극간(極諫)하고 마침내 장돈(章惇)의 탄핵을 입어 관직이 삭탈되고 이어 신주(新州)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 도중 전주를 길에서 만나 눈물을 흘리자, 전주가 정색하여 추호를 책망하기를 “가사 지완이 간관으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경사에서 벼슬을 할지라도 한질을 만나서 땀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5일 만에 죽을 것이니, 어찌 유독 영해 밖의 지역만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그대는 이 일 정도로 자만하지 말지어다. 선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소이다.〔使志完隱黙官京師, 遇寒疾不汗, 五日死矣. 豈獨嶺海之外能死人哉? 願君毋以此擧自滿. 士所當爲者, 未止此也.〕”라고 하였다. 이에 추호가 망연자실하여 감탄하며 사과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었다.〔君之贈我厚矣.〕”라고 하였다. 《宋史 卷345 田晝列傳》
전하여 여기서는 곧 저자가 유배 가던 길에 한윤명을 만난 일을 가지고 송나라 추호가 유배 도중 전주를 만났던 고사에 빗대서 한 말이다.
충신을 주장함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충신을 주장으로 삼아야 하며, 자기만 못한 사람을 벗하지 말 것이요, 과실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學而》
소재집 제2권 / 시(詩)
사형과 작별하다〔別士炯〕
거년에도 노과회요 去年盧寡悔
금년에도 노과회라 今年盧寡悔
해마다 노과회인 까닭은 年年盧寡悔
다만 욕심 욕 자가 있기 때문인데 只爲欲字在
방문만 하고 경계를 안 해 준다면 以訪不以箴
그대도 나와 똑같은 죄인이 되리 卽君與同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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