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합좌소의 모습
고려 20대 신종 때에 무관인 기흥수와 차약송이 같이 평장사가 되어 중서성에서 만났다. 차약송이 기홍수에게 공작이 잘 있느냐고 물으니, 기 또한 모란(牡丹)을 기르는 방법을 물었다.
그때 이를 들은 사람들은 평장사로서 만난 공식 석상에서 그런 하찮은 말을 하였다 하여 몹시 비웃었다.
국가에서는 도병마사를 설치하고 시중. 평장사. 참지정사. 정당문학. 지문하성사를 판사로 삼고, 판추밀 이하를 使로 봉하여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의논하게 하였으니 合坐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합좌에서의 예법은 먼저 온 이가 자리를 떠서 북쪽을 향하여 서고,
뒤에 온 이가 그 자리를 따라 한 줄로 서서 揖한 다음 함께 좌석 앞에 이르러 남쪽으로 향하여 서고,
뒤에 온 이가 그 자리를 따라 한 줄로 서서 읍한 다음
함께 좌석앞에 이르러 남쪽으로 향하여 두 번 절을 하고 곧 자리를 떠나 북쪽을 향하여 한 줄로 서서 읍한 다음에야 비로서 앉는다.
지첨의(첨의부의 종이품) 이상의 사람들이 도착하면 密直은 모두 뜰에 내려가서 북쪽을 윗자리로 하고 동쪽을 향해 서며 머리를 숙이고 손을 낮게 내려 절을 한다. 첨의는 그 위에 서서 두 줄로 절을 하고, 마루에 올라가 절하고, 읍하고 앉는 것을 앞에서 말한 예의와 같게 한다.
이미 첨의가 또 한 사람이 앉게 되면 비록 지첨의 이상의 직분인 사람이 도착하더라도 밀직이 절대 뜰에 내려가 맞는 예의는 없다. 단지 수상이 도착하면 아상 이하가 전부 뜰에 엎드려 북쪽이 상석이 되도록 동쪽으로 향하여 서서 그를 맞아들인다.
수상은 서쪽을 향해 마주 읍한 다음 마루에 올라가 절하고 읍하는 것은 또한 앞에서 말한 예의와 같다. 수상은 동쪽에 혼자서 앉는데, 이것을 曲坐(앉는 자리가 꼬부라졌다는 뜻)라고 하여 아상 이하는 전부 한줄로 앉는다. 수상이 정승이 아니면 곡좌나 뜰에 맞는 예의도 지키지 않는다.
녹사가 의논할 것을 앞에 와 보고하면 각기 의사대로 그 可不를 말하게 된다. 녹사는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하여 모든 의견이 일치한 연후에 시행하도록 하는데, 이를 議合이라 이른다.
그후는 단정게 정좌하여 입을 열지 않으므로 그 모습은 의젓하고 엄숙하여 진실로 경건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은 첨의와 밀직을 늘리고 각각 商議하는 관리가 있다. 아상의 윗자리에 판삼사사가 앉고 우사는 평리의 뒷자리와 아랫자리에 앉으며 많이 몰려서 나아가고 떼를 지어 물러나면서 가끔 높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크게 웃으며, 안방의 부부 간의 사사로운 일과, 장터의 쌀값과 소금값의 이해 등 아주 하찮은 일까지 말하였다. 이것은 기홍수와 차약송의 공작. 모란의 문답과 비교해 보았을 때 모두 한때의 엇비슷한 이야기이다.
평장사---중서문하성의 정삼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