提學公 諱 謝奇 史蹟(제학공 휘 사기 사적)
麗史略曰忠烈王元年乙亥六月甲子新定禿魯花超三等職送之都校署令韓謝奇康之子樞密李汾禧之壻年末二十超拜八品○同五年己卯三月丁巳遣帶方公澈率禿魯花入元金方慶子忻元傳子貞朴恒子元沱許珙子評洪子藩子順韓康子謝奇薛公儉子之沖李尊庇子瑀金周鼎子深等衣冠子弟凡二十五人皆超三等授職送之○文惠公本傳略曰子謝奇官至諫議大夫子渥泳初謝奇以禿魯花挈家入元泳幼長贊穀事仁宗皇帝官至河南路摠管以泳貴贈謝奇翰林直學士高陽縣候○洪奎列傳略曰忠烈選良家女將獻帝奎女亦在選中謂韓謝奇曰吾欲剪女髮何如謝奇曰恐禍及公奎不聽 禿魯花(독로화:도루아치=인질을 뜻함)
등과후 조정대부(朝靖大夫)에 이르고 첨의부좌사의대부(僉議府左司議大夫)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지제고(知制誥)를역임,
元나라에서 동정행중서성(東征行中書省)의 좌,우사원외랑(左右司員外郞)을 지냄
충열왕원년乙亥(1275)6월 원나라에 인질로 가는 도루아치(禿魯花)에 선발됨
공의 나이 20미만으로 관직을 3등급을 올려 도교서령에 임명하여 1279년 25인의 도루아치와 가솔과 함께 원에 들어감(公以都校署令在選中年未二十超三等職與二十五人己卯擊家入元)
뒤에 환국하였으며 원조에서 한림직학사 아중대부 경거도위의 직을받고(後日還國元朝贈翰林直學士亞中大夫輕車都尉) 고양현후에 추봉됨(抽封高陽縣候).
고려사에 간략히 적기를 충열왕 원년乙亥(1275) 6월 甲子에 새로 禿魯花(독로화: 도루아치=중국어로 인질을 뜻함)를 선정하는데 3계급을 특진하여 발령한 관직을 주어서 보내기로 하였다.도교서령(都校署令)에 임명된 한사기(韓謝奇)는 강(康)의 아들이요,추밀 이분희(樞密 李汾禧)의 사위니 나이 20미만으로 품계(品階)를 초월(超越)해서 8품에 배명(拜命)하게 되었다. 同 5년기묘(1279) 3월 丁巳에 대방공 철(帶方公 澈)을 파견하여 독로화를 인솔하고 원(元)나라에 들어가게 하니 김방경(金方慶)의 아들 흔(忻)과 원전(元傳)의 아들 정(貞)과 박항(朴恒)의 아들 원타(元沱)와 허공(許珙)의 아들 평(評)과 홍자번(洪子藩)의 아들 순(順)과 한강(韓康)의 아들 사기(謝奇)와 설공 검(薛公儉)의 아들 지충(之沖)과이존비(李尊庇)의 아들 우(瑀)와 김주정(金周鼎)의 아들 심(深)등으로서 문벌 좋은 집 자제(子弟)들 25인이라 모두 3등급을 올린 관직을 주어서 보냈다. 문혜공(文惠公) 본전(本傳)에 간략히 적었으되 아들 사기(謝奇)는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고 아들 악(渥)과 영(泳)이 있다. 처음에 사기(謝奇)가 독로화로 선발되어 가족을 인솔하고 원나라에 들어가니 영(泳)은 어려서부터 황도(皇都)인 장안(長安)에서 성장하게 되었고 인종황제(仁宗皇帝)에게 사사(仕事)하여 벼슬이 하남로총관(河南路摠管)에 이르렀다. 영(泳)이 이렇게 영달(榮達)함으로서 아버지 사기(謝奇)에게 한림직학사 고양현후(翰林直學士 高陽縣侯)로 벼슬을 주었다.
배위 연안이씨(延安李氏)는 밀직사(密直事) 분희(汾禧)의 딸이고.조부는 대장군(大將軍) 송(松), 증조부는 연안군(延安君) 엄(嚴) 一云 儼이고, 외조는 대부경의천군(大府卿凝川君)함양박신유(咸陽朴臣蒙生)이다.
추봉고양군부인평강채씨(追封高陽郡夫人平康蔡氏)는 중찬(中贊)낭정공(郞靖公)인규(仁揆)의 딸이고, 조부는 태위평장사정선공정(守太尉平章事靖宣公禎一作진),증조는 태사평장사경평공송년(守太師平章事景平公松年),외조는 재신동주최영(宰臣東州崔英)이다.
추봉고양군부인정씨(追封高陽郡夫人鄭氏)는 재신(宰臣)인귀(仁貴)의 딸이다.
사위 金之謙 樂安人樂安君 父司宰卿允堅
사위 宋金剛 一名琿匡正元尹礪山人 父班主琰 子宋璿礪良君之 女閔齎誕元敬王后
사위 盧承緖 交河人民部典書 子盧中善判事子魯仲喜都事 女尹安淑贊成良簡公坡平人 父政丞瑤權正中左郞
○父直修文殿休安東人孫專誕顯德王后
홍규열전(洪奎列傳)에 간략히 적었으되 충열왕이 양가(良家)의 예쁜 여자를 선발하여 원의 황제에게 바치려고 하는데 추밀부사 홍규(樞密副使 洪奎)의 딸도 마침 선발되어 대열 속에 있었다. 규(奎)가 한사기(韓謝奇)에게 이르되 "나는 내 딸의 머리를 깍아서 이번 선출을 면하도록 할까 하는데 어떨지요" 하니 사기(謝奇)가 그러면 그 화(禍)가 귀공에게 미칠까 두려우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만류하였으나 규가 듣지 아니하였다 한다.
○추록 : 가정 이곡(稼亭 李穀)이 찬(撰)한 정혜공 영(正惠公 泳))의 행장(行狀)에는 아버지 사기(謝奇)는 본국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조정대부 우사의대부 지제고(朝靖大夫右司議大夫知制誥)에 이르렀고 正惠公 泳의 영달로 인하여 한림직학사 아중대부 경거도위(翰林直學士亞中大夫經車都尉)로 여러 차례 증직(贈職)을 받았고 고양후(高陽候)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어머니 채씨(蔡氏)와 정씨(鄭氏)는 모두 고양군부인(高陽郡夫人)으로 추봉 되었으니 公은 정씨의 소생이다. 처음에 본국에서 세도(勢道)집 자제들 중에서 질자(質子:인질)를 뽑아 보내는데 正惠公의 부친이 선출된 인질 중에 있었으므로 가권(家眷)을 인솔하여 원으로 왔다고 한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족보에는 삼사좌사 주(三司左使 澍)의 배 상당군 부인한씨(配上黨郡夫人韓氏)의 조(祖)는 선수한림직학사 아중대부경거도위(宣授翰林直學士 亞中大夫經車都尉)로 고양현후에 추봉되시고 고려조의 관직으로는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도첨의(都僉議)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지제고(知製誥)이신 사기(謝奇)라고 기록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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