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형이 중국에 다녀와
성종 99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12월 21일(무신) 3번째기사 성절사 한치형이 북경에서 돌아와 선정전에서 인견하다
성절사(聖節使)9306) 한치형(韓致亨)이 북경[京師]에서 돌아오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였다. 한치형이 아뢰기를,
“지금 황제가 도불(道佛)9307) 을 매우 부지런히 신봉합니다. 신이 처음 황제의 도읍에 들어갔을 때 황제가 바야흐로 재계(齋戒) 중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이 가져간 별례(別禮)로 바치는 물건을 중국 조정에서 아는가?”
하니, 한치형이 말하기를,
“바칠 때에 교위(校尉) 4백여 인이 좌우를 벽제(辟除)하고 거리를 막았었으니, 이것으로 보면 조정에서 아마도 알 것입니다. 또 요동(遼東)에서 물명(物名)을 모두 적어서 홍려시(鴻臚寺)에 보내고, 홍려시에서 예부(禮部)로 보냈는데, 예부랑(禮部郞)이 보고 서로 말하기를, ‘지금 한씨(韓氏)가 살아 있고 오는 사신도 한씨의 족속(族屬)이므로 와서 토산물을 바친다.’ 하였고, 정동(鄭同)에게 양자(養子) 6인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황제가 조선에서 바치는 물건을 좋아하여, 친히 만지면서 완상(翫賞)하고, 찰 만한 물건이면 띠에 걸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성지(聖旨)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그러한가?”하니, 한치형이 말하기를,
“신이 하루는 정동의 집에 갔더니, 두 사람이 누런 보자기에 싼 물건을 마주 들어다가 신에게 주기에, 신이 꿇어앉아 받고 말하기를, ‘이것이 어떤 물건입니까?’ 하니, 정동이 말하기를, ‘저도 어떤 물건인지 모릅니다. 황제가 재상(宰相)9308) 편에 부치도록 명한 것이니, 요구하는 물목(物目)일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황제가 그렇게 부지런히 부처를 숭상한다면, 어떻게 정사(政事)에 힘을 다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한치형이 말하기를,
“신이 돌아오는 날에 정동이 통주(通州)에서 신을 배웅하며 말하기를, ‘전하께서 어떤 옷을 늘 입으십니까?’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강색(絳色)9309) 의 곤룡포(袞龍袍)를 늘 입으십니다.’ 하니, 정동이 말하기를, ‘황제께서는 전하와 왕비·선왕비(先王妃)가 늘 입는 옷을 보고 싶어하니, 유청(柳靑)·자주·초록 따위 여러 가지 색의 옷을 각각 서너 벌씩 지어서 들여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황색과 자주색은 천자(天子)와 후비(后妃)의 예복(禮服)이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평상시에 입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정동이 말하기를, ‘재상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황제께서 전하와 왕비의 옷을 보고 싶어 하니, 진헌 물목 단자(進獻物目單子)에 「황색과 자주색은 우리 나라에서 입지 않는 것이나, 명(命)이 있으므로 지어 보냅니다.」라고 써야 할 것이고, 제반 물건 안에 토산물이 아닌 것이 있으면 역시 「토산물이 아니므로 명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써야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정동이 과연 나오려 하던가?”
하니, 한치형이 말하기를,
“정동의 가신(家臣) 한 사람이 동녕위(東寧衛)에 사는데, 우리 나라 말을 압니다. 신이 함께 황제의 도읍에 가는데, 신에게 말하기를, ‘ 정 태감(鄭太監) 9310) 은 늘 조선에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였습니다. 돌아올 때 요동(遼東)에 이르니, 총병관(摠兵官) 한빈(韓贇)이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홍수치(洪水治)는 홍치(洪治)라고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은 이미 전사(戰死)하였습니다.’ 하기에, 신이 묻기를, ‘어떻게 확실히 아는가?’ 하였더니, ‘야인(野人)들이 다 죽었다고 말합니다.’ 하였습니다. 한빈이 또 사람을 보내어 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조선을 위하여 모든 성식(聲息)에 관계되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이 없는데, 지금 중국에서 내 총병(摠兵)의 직임을 빼앗으려 하니, 너희 전하께서 「한빈이 야인(野人)을 잘 방어하므로 조선의 사신이 중국(中國)에 통할 수 있으니, 한빈의 벼슬을 해임하지 마소서.」라고 아뢰면, 황제가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전하께서 이 말을 들으면 역시 주청(奏請)하려 하시겠으나, 황제가 뜻을 결정하여 체직(遞職)한다면 우리 전하께서 청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더니, 명을 받고 온 자가 말하기를, ‘재상의 말이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하였다. 한치형이 나가고,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이제 한치형이 왔으니, 진헌할 물건을 미리 의논하여서 장만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폐단은 마침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상을 불러서 널리 의논하라.”
하였다.
[註 9306]성절사(聖節使) : 황제의 탄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 ☞
[註 9307]도불(道佛) : 도교(道敎)와 불교(佛敎). ☞
[註 9308]재상(宰相) : 한치형을 가리킴. ☞
[註 9309]강색(絳色) : 진홍색. ☞
[註 9310]정 태감(鄭太監) : 정동을 가리킴. ☞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9 | 공신부인 한씨가 조선에 끼친 영향 | 관리자 | 2023.10.09 | 20 |
28 | [韓永矴 丈人 金英烈] | 관리자 | 2023.10.09 | 21 |
27 | 參議公 한전 유사1 | 관리자 | 2023.10.09 | 21 |
26 | [조선왕조실록에서 11세 의성김씨조모님] | 관리자 | 2023.10.09 | 19 |
25 | 燕山朝에 선조님들의 피해 | 관리자 | 2023.10.08 | 18 |
» | 한치형이 중국에 다녀와 | 관리자 | 2023.10.08 |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