輓詞(만사)---9世 韓誠齋政丞
율시(律詩)--------가정집 제16권에서
用順菴韻哭韓誠齋政丞 순암(順菴)의 운을 써서 한성재(韓誠齋) 정승의 죽음을 애도하다
都門丹旐想飛飛..........도성 문에 붉은 만장 휘날리는 속에
千里啼痕久未晞..........천리의 눈물 흔적 오래 마르지 않으리
共爲世臣悲故國..........모두 세신으로서 고국을 슬퍼하였는데
獨留喬木掛斜暉..........홀로 남은 교목 위에 석양이 걸렸어라
吾王尙老人猶望..........임금이 원로를 존중하여 기대들을 하였건만
彼相扶顚事已違..........나라 일으킬 정승의 일 이미 어긋나 버렸도다
風月蓮莊曾有約..........풍월 어린 연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우리 약속
知公廻首更依依..........공 또한 돌아보며 못 잊어 할 줄 알겠도다.
思肅公 韓 渥 : [원종 15년(1274)~충혜왕 3년(1342)]
공은 고려 충선(忠宣), 충숙(忠肅), 충혜(忠惠)왕조 때의 문신이다. 휘(諱)는 악(渥)이요 자(字)는 자포(子布)요 호(號)는 성재(誠齋)또는 적선문(積善門 : 門下生이 지어준 號)이다. 都僉議中贊과 右政丞(우정승)을 지냈다. 諡號(시호)는 사숙(思肅). 公(공)은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사기(謝奇)의 아들이요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문혜공(文惠公) 강(康)의 손자이다. 蒙古. 漢語에 能通하였으면 천성이 온아정민(溫雅精敏)하며 人道의 교훈에 감염(感染)되어 유학의 교풍이 있으며 官職에 있어서의 處事는 안상(安祥)하고 근신하여 宰相으로서의 명망이 으뜸이었다고 한다.
이곡(李穀) 1298(충렬왕 24)~1351(충정왕 3).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부(仲父), 호는 가정(稼亭). 아버지는 자성(自成)이며 아들은 색(穡)이다. 백이정(白正)·정몽주·우탁(禹倬)과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꼽힌다. 1317년 거자과(擧子科)에 합격,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332년 원나라에서 정동성 향시(鄕試)에 수석,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했고, 한림국사원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이 되어 원나라 문사들과 사귀었다.
*교목과 관목의 차이를 구분하면 교목은 감나무처럼 중앙에 큰 줄기가 있고, 곁으로 작은 줄기와 가지가 뻗어 나간다. 관목은 개나리처럼 중앙의 줄기가 없어 잔 가지나 줄기들로 이루어진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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