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례(韓仲禮)
급암시집 제2 ~율시(律詩)
곽 제학 균 에게 부치다〔寄郭提學 㻒〕
나는 늙었는지라 세상과 저절로 소원하여, 일찍이 나를 아는 자는 재상인 경재(敬齋) 한중례(韓仲禮) 공과 지신사(知申事) 이배중(李培中)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제 경재의 집에 이르러 술을 몇 잔 마셨는데 주량이 적어서 곧 취했다. 이로 인해 취기를 띠고 공의 집을 찾아가 곧바로 안채로 들어갔는데 부인이 피하는 줄을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 부끄러워 삼가 시를 바쳐 사죄하노니 한 번 웃고 용서하시면 좋겠다.
노년에 아는 이라고는 그대 밖에 없으니 / 老來相識無余子
취한 가운데도 잊기 어려운 건 단지 이 마음이네 / 醉裏難忘只此心
한밤중 술이 깨자 크게 웃노니 / 夜半酒醒因大笑
옆에 수묵관음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일세 / 不知旁有墨觀音
자주(自注)에 “중서령(中書令) 이익세(李益歲)가 그 부인을 일러 ‘수묵관음(水墨觀音)’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곽 제학(郭提學) : 고려 후기 관료인 곽균(郭㻒)으로 1350년(충정왕2)에 밀직제학(密直提學)에 임명되었다. 《동문선(東文選)》에 곽균이 지은 〈기광주목사남손정긍(寄廣州牧使南巽亭兢)〉이라는 시가 전한다.
한중례(韓仲禮) :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사기(韓謝奇)의 손자이며, 충혜왕 묘정에 배향된 한악(韓渥)의 아들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우대언으로서 판삼사사(判三司事)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서연관(書筵官)이 되었고, 1350년(충정왕2)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계성군(繼城君)에 봉해졌다. 공민왕은 즉위한 뒤 친히 그의 집에 이어(移御)하여 담론하였다.
이배중(李培中) :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자는 익세(益歲)이고, 호는 운와(雲窩)이다. 아버지는 이천(李蒨)이고, 조부는 이세기(李世基)이다. 부대언(副代言), 지신사(知申事), 중서령(中書令)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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