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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EJOUNG!------한진휘 論

시묘동.란곡

관리자 2025.03.16 11:25 조회 수 : 34

侍墓洞(시묘동)

京畿道 高陽郡 碧蹄邑 官山里(경기도 고양군 벽제읍 관산리)의 이 마을은 1471년대 까지 속명 깊은 내(기프내:深川)로 불리워 왔다. 이때만 해도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국도가 고양리(碧蹄館이 있던곳)를 거 쳐 혜음령(惠蔭嶺)을 넘어 파주군 광탄읍(坡州郡 廣灘邑)으로 통하였던때 이고, 현재의 통일로는 경술국치(庚戌 國恥) 이후 신설된 길로서 그 당시는 벽제 시장(碧除市場)으로 들어오는 산모퉁이(일명 용연산(龍淵山)으로 동 네에서는 명산이라 일컬으며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山이다.)단안(斷岸)까지 곡능천(曲陵川) 물이 구비쳐 내렸 으며 구비치는 소(沼:물이깊의 고이는곳)에서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깊었다 한다,이와 같은 시기 인 조선조(朝鮮朝) 성종(成宗) 초기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계미(繼美)가 졸 (卒:1471년)하자, 한성좌윤(漢城左尹)으로 있던 큰아들 의(嶬) 가 사패지(賜牌地)인 장령산록(長嶺山麓)에 아버지 의 장례를 치른후 여막(廬幕:상주가 거쳐 하는곳)을 3년상을 마치기까지 살았다. 그 이후 그 일대의 산은 韓氏 의 세장지지(世葬之地)가 되었으며 이 동네(侍墓洞)는 시거한씨(始居韓氏)의 세존지(世尊地)로 내려오고 있는바 이때부터 동명(同名)을 시묘동(侍墓洞) 혹은 시묘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토한(土汗)란곡(蘭谷)

충북 영동군 황간면 란곡리는 예전에 토한(土汗)이라 부르던 마을이라 한다. 이 곳을 신 라 말기에 청주 한씨의 시조인 란(蘭)이 태어난 곳으로서 그 모친이 그를 낳을 때 인근 30리 이내의 산과 흙 이 땀을 뻘뻘 흘리더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산모가 큰 인물을 낳으려고 하므로 산이나 "흙도 힘이 들어 땀을 흘리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마침내 큰 울음 소리와 함께 그가 태어 났으므로 마을 이름을 흙이 땀을 흘렸다" 는 뜻에서 토한(土汗)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란(蘭)은 무예를 읽혀 그 이름이 온 나라에 퍼졌으며 고려태조 왕건(高麗太祖 王建)이 견훤을 치기위해 군사를 이끌고 그의 집앞을 지나자, 그 칼을 짚고 나아가 왕 건의 군사를 맞이하고 군대를 하룻동안 배불리 먹인후 그도 왕건에게 가세 하였다. 뒤에 견훤과의서원(西原)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삼중대광태위(三中大匡太尉) 라는 큰벼슬을 내렸다고 하며,이곳을 란곡이라 부르게 된 것은 그가 태어난 곳이므로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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