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韓楨(한정)
선조의 諱에 대한 問 중종반정때에 忠常→澮(潔의兄)고양으로 귀향 하였지만, 진도문중은 그 먼 先考고향 高陽에서부터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을 거쳐 영암군 도포면에서 世居 하시다가 家産을 정리 (韓三喜한삼희1509 推定)선조의 妻家인珍 島(제주양씨집성촌)로 移住하였으며 壬辰外亂1592,과丙子胡亂1636를 거치며 진도에 입향조이신 (潔결)선조께서 모진 풍파속에 세거 하시며 (子三喜삼희) 선조께 선고의고향과 낙향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문의 (癸亥靖亂계해정란)에 18세惟省,惟翔,惟吉,惟赫형제들에게 禍가 미치니 18세楨(정)할아버지의 (行 列항렬)을 다르게 하여 禍를 피하였으니, 가문의 내력을 未洽(미흡)하나마 楨(정)할아버지의 諱를 통하여 후손에게 전함이 아닐까! 진도문중의 계보는 忠 常→潔→三喜→胤臣→楨으로 계보를 이어왔다. 후손에게 (父親胤臣윤신)께서 (嫡子楨정)으로 (名이름)을 지을때에 가시에 찔려 피 흘린 아버지는 (潔결) 셋째 하늘에 있는 빛이고, 가시에 찔려 피 흘린 하늘 사람이다. 라는 뜻으로 몸과마음이 밝고 힘찬 아침의나라 아침에뜨는 태양이 산의나무 가지사이로 세상을 굳건 튼튼하고 일차게 살아가라 (名이름胤臣윤신) 하였으며, (次子韓祥한상) 이름자는 상서롭다 와 조짐, 자세하다 라는 뜻으로. 祥자는 示(보일시)와 羊(양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희생양(犧牲羊)이라는 말도 여기 서 유래했으며. 羊자에 제단을 그린 示자가 결합한 祥자는 신에게 양을 바쳐 제사 지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물을 바치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祥자가 제사를 통해 좋은 일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곳에 叅義公派 15世孫 潔선조께서 子三喜께 학문을 연마 시키어 뜻을 전하니 17세 胤臣(윤신)선조께서 妻家昌寧曺氏에서 世俗을 이루었으며, 선덕(先 德 조상들이 선행을 베풀고 행하면 그 선행이 후대로 이어지는 결과)을 후대에 전하지 못할까 몹시 걱정하여 홀로 생각하여, 子楨(정)과祥(상)의 名(이름) 을 지었으며 윤신(胤臣)공의 덕과 높은 풍도 같은 것은 전술(傳述기술(記術)하여 전(傳)함)해야 한다는 것은 공께서 말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현부(賢否현명함과 그렇지 못함)를 따지지 않고 모두 비지(碑誌)를 구하고 비지(비문(碑文) 비에 새긴 글)가 한번 나오면 누구나 선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으로 뒷사람을 속이는 것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여 진도에 설단을 竪立하였고, 고성리에서 석현마을로 향하는 도로변 산기슭에 위치한 청 주한씨 참의공파 문중사우忠賢祠(충현사)를 통하여 과중하게 포양(褒揚칭찬하여 장려함)하니, 世德(대대로 쌍아온 미덕)이 아닐까! 전 하여 본다.
◾한삼희(韓三喜)1509 推定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오래된 제주 양씨)의 집성촌이다.
◾박원종(朴元宗, 1467년 ~ 1510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 겸 정치가(政治家)로 자는 백윤(伯胤),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의 처 남이자 윤임과 장경왕후의 외숙부이기도 하다.
◾노수신[盧守愼]1515년(중종 10) ~ 1590년(선조 23) 을사사화[乙巳士禍]1545년(명종 즉위년)이후 1547년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 진도로 移拜 19 년간[沃州二千言]노수신이 진도에 유배와서 자기의 심사를 이천자(二千字)로 적어 놓은 글 내가 귀양살이 온지도 어언 반년이 되었구나. 온 포구는 왜적들이 발동하여 피에 젖었고 석가래 사이에 시(詩) 몇 편 걸려 있어 읊으려니 목이 먼저 메이 는구나.- 30 멀리 우수영(右水營)을 바라보니 움막들이 언덕 위에 의지하고 있는데 흩어진 군졸들의 거처라네. 온 고을은 분탕되고 전답(田畓)에는 쑥풀만 무성하네. 가엾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붙잡고 떠돌아다니니 애처러워 차마 볼 수가 없어 싸릿문을 닫아 버렸네. (조선 중기 진도군의 풍속과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 는 자료)「옥주이천언」 [沃州二千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甲寅正月1554년 명종9년.4월 점찰산에서 한숭덕에게 보이다 占察山示韓崇德 1545년~1564년 유배생활중 소재선생 40세에 한숭덕(韓崇德)점찰산에서 한숭덕에게 보이다〔占察山示韓崇德〕소재집3권 ▪소재집 제4권 / 시(詩) 향교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숭덕의 시운에 차하다〔飮鄕校次韓崇德〕乙卯年10월 (1555년(명종10)
◾한숭도(韓崇道)1567년丁卯生.(진도군 고군면 석현리및 조도면 나배도리 세거)
◾한숭덕(韓崇德)생년추정世居不 족보에 사위로 기록 되어 있으나, 밀양인 박인복(朴麟福, 1550~1595)부인 정주한씨(定洲韓氏)기록 사이에 박성(朴晟), 박섬(朴暹) 등 형제를 두었다. 명종 5년(1550) 의신면 칠전리에서 태어났고 1630년 형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효충사에 배향되었다. ◾한숭무(韓崇武)韓楨과配位密陽朴氏(仁春)繼配忠州池氏 사이에 仨子로 출생 하여 子.應瑞.를 두었으나 後系无.
◾한숭지(韓崇智)1586년 丙戌生.(진도군 고군면 연동 및 유교리 일대 세거)1650년 효종원년 64세 졸 學行著世. 이후 27세 韓萬順선조의 三子 28세 韓世泰할아버지께서 해남군 황산면으로 이주 하여 후손 세계를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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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15세 韓會(한회)의 後孫 | 관리자 | 2025.06.27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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