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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사-韓永矴]

관리자 2023.09.27 09:27 조회 수 : 18

[순창군사-韓永矴]

 

(서성부원군 한영정(西城府院君 韓永矴 : ?∼? 12世)

조선조 초기의 문신, 녹사공(錄事公 : 寧) 증 병조판서의 아들로 찬성사 서원군(西原君 方信)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니 영의정 문절공(文節公 : 仲和)의 따님이다.

공은 가문(家門)이 불의지변(不意之變 : 뜻밖의 변고)으로 참화(慘禍 : 참혹한 재앙 과 화난)속에서 생장(生長)하였다. 그리고 이때는 이태조(李太祖 : 李成桂)가 고려를 타도(打倒)하고 조선(朝鮮)을 개국(開國)하던 혁명시기(革命時期)였다. 그후 조선조에 와서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순창군사(淳昌郡事)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가운(家運)을 만회(挽回 : 바로 잡아 돌이킴)하는 계기(契機)가 된 것이다.

공의 생졸(生卒)과 관직년조(官職年條)는 전기(傳記)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장남인 양절공(襄節公 : 確)의 현달(顯達)에 따라 참판, 판서, 찬성, 영의정에까지 추증되고 서성부원군에 추봉된 사실만을 알 수 있다. 공의 묘소도 보첨(諸牒)에는 장단세곡(長湍細谷)으로 기재(記載)되어 왔으나 실호(失護)되어 고양시 내유동에 서원군(西原君 : 方信) 녹사공(錄事公 : 寧)과 함께 설단(設壇)하고 음 4월 13일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니 의성군 양소공(襄昭公 : 英烈)의 따님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생육(生育)하니 장남은 양절공(義節公 : 確)이고 차남은 감사공(監司公 : 전)이며 3남은 증 영의정 청성부원군 정랑공(正郞公 : 질)이다.

장녀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여비(麗妃)가 되어 중궁(中宮)의 내정(內政)을 전담(專擔)하였고 차녀는 세종 9년(1427)에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後宮)으로 궁중에 들어가 성종 14년(1483)에 별세하니 명나라 헌종(憲宗)은 몹시 슬퍼하고 탄식하며 사제(賜祭)와 시호(諡號) 를 공신(恭愼)이라 내렸다.

 

(왕조실록에서 한영정)

1.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5월 9일 갑오 3번째기사 / 중국에 진헌할 처녀로 황씨와 한씨 등을 뽑다

처녀(處女)를 가려 뽑았다. 의정부·육조·대간(臺諫)과 지신사 조말생(趙末生), 내관(內官) 노희봉(盧希鳳)에게 명하여 중국에 진헌할 처녀를 가려 뽑게 하였더니, 황씨(黃氏)·한씨(韓氏)를 상등(上等)으로 삼았다. 황씨는 용모가 미려(美麗)하니, 고(故) 부령(副令) 황하신(黃河信)의 딸이고, 한씨는 선연(嬋娟)하니 고(故)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韓 永矴)의 딸이었다.... 

 

2.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5월 1일 무자 4번째기사 / 진헌할 처녀로 간택된 한영정의 막내딸이 혼수로 준비했던 재물을 나눠주다

처녀 한씨(韓氏)는 한영정(韓永矴)의 막내딸이다. 맏딸은 명나라 태종 황제의 궁에 뽑혀 들어갔다가, 황제가 죽을 때에 따라 죽었으므로,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아뢰었으므로, 와서 뽑아 가게 되었는데, 병이 나게 되어 그 오라비 한확(韓確)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누이 하나를 팔아서 부귀가 이미 극진한데 무엇을 위하여 약을 쓰려 하오."

하고, 칼로 제 침구(寢具)를 찢고 갈마두었던 재물을 모두 친척들에게 흩어 주니, 침구는 장래 시집갈 때를 위하여 준비했던 것이었다.

○處女韓氏永矴之季女也。 長女選入太宗皇帝宮, 及帝崩殉焉。 昌盛尹鳳又奏季女貌美, 故來採之。 及有疾, 兄饋藥, 韓氏不服曰: "賣一妹, 富貴已極, 何用藥爲?" 以刀裂其寢席, 盡散臧獲家財於親戚。 寢席, 將嫁時所備也。

 

3.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9월 11일 무인 5번째기사 / 사은사 좌의정 한확의 졸기

 

스스로 이기는 것이 절(節)이다. 여비(麗妃) 한영정(韓永矴)의 맏딸. 한확(韓確)의 누이. 공녀(貢女)로 명 (明)나라에 뽑혀 들어가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의 궁녀(宮女)가 되었다가 어여(魚呂)의 난(亂) 때 순사(殉死)당하였음. 입조(入朝) 중국 조정에 들어감. 고명(誥命) 중국의 황제가 우리 나라의 임금에게 내려 주는 왕위(王位) 승계(承繼)를 인준하던 조칙(詔勅)... 

 

4. 세조실록 10권, 세조 3년 11월 24일 갑신 2번째기사 / 지문(誌文)

 

증직(贈職)되었고, 황조(皇祖)의 휘(諱)는 한영정(韓永矴)이니, 대광 보국 숭록 대부 영의정부사(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府事)에 증직되었으며, 황고(皇考)의 휘는 한확(韓確)이니 봉의 대부 광록시 소경(奉議大夫光祿寺少卿)에 선수(宣授)되었고, 수충 위사 협찬 정난 동덕 좌익 ... 

 

5. 성종실록 149권, 성종 13년 12월 21일 을유 2번째기사 / 대사헌 이철견이 제안 대군의 이혼에 대하여 아뢰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대사헌(大司憲) 이철견(李鐵堅)이 아뢰기를,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아내 박씨는 전에 비자(婢子) 금음물(今音勿)의 무고(誣告)를 당하여 거의 죄없이 모함에 빠질 뻔하였고, 또 요즘 대군이 버린 아내 김씨와 몰래 통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혐의로운 처지에 참소하고 이간하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밝게 분변하지 않을 수... 

 

6. 성종실록 162권, 성종 15년 1월 4일 임진 5번째기사 / 성절사 한찬이 북경에서 칙서·한씨에 대한 제문·고명·묘지명 등을 받들고 오다

 

성절사(聖節使) 한찬(韓儹)이 칙서(勅書)를 받들고 북경[京師]에서 돌아왔는데, 칙서에 이르기를, "선덕(宣德) 사이에 왕의 나라의 여인 한씨(韓氏)가 궁중[宮闈]에 들어와서 성실하게 일에 이바지한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근래에 병고(病故)로 인하여 소사(所司)에 명해서 장사하게 하고, 궁내에서 글을 내어 제사하였다. 시호(諡號)를 공신(恭愼)으로 하고, 고명(誥命)을 주어... 

 

7. 성종실록 193권, 성종 17년 7월 14일 정사 3번째기사 / 성절사 한한이 사사로이 바치는 물건을 가져가는지의 여부를 아뢰다

 

않았으니, 그만두게 하소서." 한씨(韓氏) 한영정(韓永矴)의 막내딸로, 이름은 계란(桂蘭)임. 세종(世宗) 9년(1427)에 명(明)나라 선종(宣宗)의 후궁(後宮)으로 뽑혀 들어가 4조(四朝)를 섬기다가 성종(成宗) 14년(1483) 5월에 74세로 그곳에서 사망하였음. 《성종실록》 10년 7월조 사신(史臣)의 논평에, "한씨는 한확(韓確)의 누이로 명나 라 선종 황제(宣宗皇帝)의 후궁(後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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