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李梡)
미상∼1455년(단종 3). 본관은 전의(全義).
이완(李梡)은 태종(太宗)과 숙선옹주 안씨(淑善翁主安氏)의 딸인 경신옹주(敬愼翁主)에게 장가들었고 1430년(세종 12) 전의군(全義君)에 봉해졌다.
1442년(세종 24) 6월에 명나라 영종(英宗)의 비인 효장전황후(孝庄錢皇后)의 책봉을 하례하는 진하사로서 중국에 가게 되었는데, 중국에서는 동성(同姓)이면 장가가지 않는 점을 고려한 세종의 의견을 따라 어머니 한씨(韓氏)의 성을 빌려 다녀왔다. 세종은 이 때 대소 종친들의 동성혼을 금지할 것을 항식(恒式)으로 삼으라는 왕명을 내렸다. 그 해 10월에 돌아왔는데, 통사(通事) 신백온(辛伯溫)과 고용지(高用智)가 서반(序班) 진지(陳智)에게 이완이 부마(駙馬)이니 상이 없느냐고 물은 것이 문제가 되어 파면을 당하기도 하였다. 품계는 조선 시대 의빈(儀賓) 정2품 상(上)인 봉헌대부(奉憲大夫)이고, 봉호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의위(全義尉)’라고 되어 있고, 『선원계보기략』에는 ‘전성위(全城尉)’라고 되어 있는데, 언제 고쳤는지는 알 수 없다.
시호(諡號) 양효(良孝)의 양(良)은 온량(溫良)하고 즐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효(孝)는 자혜(慈惠)하고 어버이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신옹주의 묘는 양주 고령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완을 합장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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