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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연과 군자
연꽃은 군자의 꽃으로 일컬어진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면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군자나 고고한 선비를 표상해 왔다. 연꽃이 이와 같이 군자의 꽃으로 자리잡게 된 데는 송(宋)나라 주무숙(周茂淑)의 〈애련설(愛蓮說)〉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중이나 지상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래로 세상사람들은 모란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홀로 연을 사랑하리라. 연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은 허허롭게 비우고도 겉모습은 반듯하게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다. 그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더욱 맑으며 정정하고 깨끗한 몸가짐,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는 없도다.
그래서 나는 국화는 꽃 가운데 은사(隱士)라 할 수 있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富貴者)라 할 수 있는데 대해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로는 듣기가 어렵다. 나처럼 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을까? 모란을 사랑한다는 속인들만이 너무 많구나.
〈원문(原文)〉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晋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予獨愛蓮之出御泥而不染, 濯淸蓮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而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 菊, 花之隱逸者也, 牡丹, 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也.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牡丹之愛, 宜乎衆矣.
주무숙은 명망이 매우 높았던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연은 도학자로서 그의 금선(琴線)에 와 닿은 바가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애련설〉은 불과 119자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연이 지닌 덕을 너무도 잘 나타내고 있어 고금을 통한 명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글은 자연 속에서 도덕적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는 구도적(求道的)인 태도와 세속에 대한 의연한 자세가 혼연히 융합된 평명청신(平明淸新)한 글이다. 연을 도학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에 대한 순일(純一)의 사랑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련설〉은 세 가지 층위로 뜻을 나타내고 있는데, 첫째는 세상에서 사랑할 만한 꽃이 매우 많지만 사람들은 각기 좋아하는 바가 있다고 하였고, 둘째는 자기가 유독 연꽃을 사랑하는 것과 그 원인을 설명하였고, 셋째는 꽃을 빌려 시속(時俗) 가운데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고 세력있는 사람에게 나아가는 자가 많은 것을 개탄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중반에서 연꽃의 미려한 외형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 꽃다운 기질과 고결한 덕성, 훌륭한 정조, 올바른 풍도에 대해서 너무나 진실에 가깝고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글에서 연의 "속이 비어 있다(中通逋)"함은 정신이 응체(凝滯) 울굴(鬱屈)함이 없이 투명하게 관철되어 있음을 말한 것이고 "바깥은 똑바로 되어 있다(外直)"함은 행동이나 자세가 왜곡됨이 없이 언제나 한결같음을 말한 것이며 "줄기도 가지도 내지 않는다(不蔓不枝)"함은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위세를 부리는 일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나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이 발표된 후 많은 유학자들은 이 글에 대해 최상의 찬사를 보냈고 또 한결같이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고 하여 연꽃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구한말의 문장가 조긍섭(曺兢燮)은 주돈이의 〈애련설〉에 비주(批注)를 한 〈애련설비(愛蓮說批)〉란 글을 지었는데 그는 이 글에서 이 한 편의 글은 겨우 119자에 불과하지만 한 자도 옮기거나 움직일 수 없고, 더하거나 덜 수 없다고 하여, 〈애련설〉의 뛰어난 편법과 설의의 우수성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특히, 이 내용에 대해 한 구절 한 구절 주석을 달아 이것이 바로 군자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보다 훨씬 앞서 조선 초기의 정도전(鄭道傳)은 〈경렴정명후설(景濂亭銘後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찍이 말하기를, "옛사람에게는 각기 사랑하는 화초가 있었다" 한다. 굴원(屈原)의 난초와 도연명(陶淵明)의 국화와 염계(濂溪)의 연꽃이 그것으로 각각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물건에 붙였으니, 그 뜻이 은미하다 하겠다. 그러나 난초에는 향기로운 덕이 있고, 국화에는 은일(隱逸)의 높은 것이 있으니 그 두 사람의 뜻을 볼 수가 있다. 또 염계의 말에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 하고 또 이르기를 "연꽃을 나만큼 사랑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했다.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함께 하는 것은 성현의 욕심이며, 당시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을 탄식하고 뒤에 오는 무궁한 세상을 기다렸으니, 진실로 연꽃의 군자됨을 알면 염계의 즐거움을 거의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연하여 성현의 낙을 아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황노직(黃魯直)이 이르기를, "주무숙의 흉중은 쇄락(灑落)하여서 맑은 바람과 갠 달(光風霽月)과 같다"고 하였다.
정자(程子)는 이르기를 "주무숙을 본 뒤로, 매양 중니(仲尼)와 안자(顔子)의 즐거운 곳과 즐거워하는 것이 무슨 일인가를 찾게 되었다. 그뒤로부터는 풍월을 읊으며 돌아오는 것이 "나는 증점(曾點)을 허여한다"는 뜻이 있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도전(道傳)은 혼자 생각하건대, 염계를 경앙하는 방법이 있으니 모름지기 쇄락한 기상을 알아 얻고, '증점을 허여한다'하는 뜻이 있은 연후에야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탁광무(卓光戊)가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지었는 바, 이제현(李齊賢)이 그 정자 이름을 경렴정(景濂亭)이라고 하였는데, 정도전이 그 명(銘)을 쓰면서 지은 글이다. 경렴정이란 이름은 염계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염계를 경앙(景仰)한다는 뜻이었다. 후세의 선비들이 얼마나 염계를 사모하고자 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글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돈이는 연꽃을 통해서 군자의 이미지를 가장 적절하게 나타냄으로써 후대 유학자들의 연꽃에 대한 인식을 규범지어 거의 획일화시킬 정도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또 《화암수록(花菴隨錄)》의 〈화품평론(花品評論)〉에서는 연꽃의 품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고나 할까, 비 갠 맑은 하늘의 달빛이라고나 할까, 논하되 홍백련(紅白蓮)은 강호에 뛰어나서 이름 구함을 즐기지 않으나 자연히 그 이름을 감추기 어려우니, 이것은 기산(箕山)·영천(潁川) 간에 숨어 살던 소부(巢父)·허유(許由)와 같은 부류라 하겠다.
이 글에서는 연꽃의 모습을 맑은 가을 물, 맑은 달빛, 훈훈한 봄바람 등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군자나 은사의 정일한 풍모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연을 소부와 허유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중국 요(堯)나라 때 살았다는 전설상의 은사이다. 허유는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도망하여 기산 아래 영수 물가에서 숨어 살았는데 다시 구주(九州)의 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 귀가 더럽혀졌다고 하여 영수의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한편 소부는 산속에서 나무 위에 가지를 얽어 거처를 만들어 그곳에서 잠을 자고 했기 때문에 소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 역시 이 세상의 영리를 등지고 살았다고 한다.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했으나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는 또 허유가 영수에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물이 더럽다고 하여 귀를 씻은 곳보다 더 윗쪽으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연꽃은 소부와 허유처럼 굳이 명성을 구하지 않더라도 은사의 풍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명성은 감추기 힘들 것이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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