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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EJOUNG!------참의공파 先系 이야기(한진휘 論)

한충상 한회~문중

관리자 2025.03.23 20:53 조회 수 : 37

◾15세 韓會(한회)의 後孫 父親 韓忠常. 母親 南陽洪氏(父:洪瑞從)의 첫째 아들로 한회(別坐각 관아에 둔 정ㆍ종오품 벼슬)嫡子세립(世立)无後이며, 次子세건(世建)1545년乙巳士禍순천박씨 문중이 避禍에 두 兄弟 에게도 禍가 미치어(无後절손(絶孫)되었고, 次子세건(世建)후손은 忠順(강화부사)할아버님의 孫(16세韓世弘의4子瓘 양주송산세거) 에서 繼後(계후)하여 왔지만 18세 韓惟赫(훈령도정)과 韓惟奭 두형제를 두었으나 壬辰外亂1592,丙子胡亂1636를 거치며 고향에 갈 수가 있는 근거를 상실한 것이 가 장 큰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보여진다.

 

 

※18세 한유혁(韓惟赫) 공(公)은 관(瓘)의 아들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전사(戰死) 하였다. 선계(先系)와 관작(官爵)을 살필 유록(遺錄)이 없으므로 후일(유록이 나타나길 바람)을 기다린 다 라고 되어 있으나, 1623년 광해 말년 정변으로 광해가 페위 되었다. 1628년(인조6) 페위된 광해를 상왕으로 仁城君李珙을 왕으로 옹립 하려는 역모 사건에 양경홍(梁景鴻)등이 홍타이지 후금-여진족 과 연계해 강화도에 정배된 광해를 상왕으로 옵립 하려 했다 하여 피화 되었나 사료 된다. 사촌 한유길(1568년 무과 급제자 경기 고양 출생)의 1628년1월~1629년 12월 처형 되었다. 이때에 한유상(韓惟翔윤관 의子) 한유길(韓惟吉윤광 의子) 한유혁(韓惟赫瓘의子) 18세 惟자 항렬 가계도를 살펴 보면 사촌형제들의 被禍로 경기 고양 땅으로 귀향하지 못한 계기가 아닌가 사료 된다. 그러나 19세 한희(韓曦) 때부터 양주 진번 괘현에 괘재고개·괘현(掛峴)에 定着 하여 후손세계 를 이어 왔으며, 자연 마을로는 가운데말[간댓말]·곳창재[골창 지]·괘재[괘현]·구미(龜尾)·구수마을[구수고개]·기와골·바깥말·발운마을[배루니, 바루니, 물가배루니]·방주골[방축마을]·서도리(西道里)·여우골[여의동(如 意洞)]·웃말 등이 있다 구수마을에서 여우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나는 행인들이 이고개에서는 허리를 짚고 쉬어간다 하여 허리걸 ‘괘(掛)’자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양주시에- 25 서 괘현이란 땅이름은 은현면 하패리에서 확인된다. 이 고개를 중심으로 해서 괘재 혹은 괘현(卦峴·掛峴)으로 불리는 마을이 조성되어있다. 그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괘재마을로 불려지게 되었다. 양주시 은현면 운암리 구수고개 에서 하패리로 넘어오는 고개이다 운암리와 하패리의 경계를 이루 고 있다. 본래 양주시 현내면의 일부로서 옛날 사천현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패라 했는데 서내비 남동쪽의 소래산 밑에 있는 시내 혹은 그 시내 옆에 있는 마을이다. 남양(南陽) 홍씨(洪氏) 집성촌이다. 이곳이 15세 (한회韓會)할아버지의 외가집이다. 20세 韓後相1599년己亥生~1674년甲寅卒. 嘉善大夫戶曹叅判 兼同知義禁府府使 贈職. 配:정부인 南陽洪氏 1599년己亥生~1636년丙子卒 父 宇日. ◾기와집말 이곳 마을에 유일하게 기와집이 있다는 뜻에서 (기와집이 있는 마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784-1)이라 불리우던 것 이변하여 기와집 마을〉 기와집 말로 불리게 되었다. 한씨 종가집터이며 남양부부인 홍씨 종중 재실이 있다. 홍씨는 조선 초기 재상인 양절공 한확의 부인이며 이 고을 이 처가집 고을 이다. 後孫들의 세계가 이때까지 양주 은현 에서 세거 하였다가 동두천생골, 양주능곡으로 이주 하여 생활 하여진걸로 보여진다. 24세 韓鎭九(한진구)1769년 英祖45 己丑生 ~1800년 正祖24 庚申卒12월24일 配 南原尹氏1768~1801년戊子生 父 縣監 尹商欽1742壬戌生의 따님. 조선 후기에 공인(恭人) 남원윤씨(南原尹氏)가 지은 가사. 모두 229구. 망부(亡夫)를 향한 애절통한의 정한(情恨)을 담아 지은 가사이다. 작자인 남원윤씨는 남편 한진구(韓鎭九)가 1801년 辛酉 3월, 남편이 1년이나 병마 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하직한 지 100일이 되던 날 「명도자탄사命道自嘆辭」와 유서 아홉통을 남기고 독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여 섬돌 앞에 나서, 새삼 남편을 여읜 슬픔과 그 때 함께 따라 죽지 못하고, 이승에서는 만날 수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난 일들에 대한 술회와 늙은 부모를 효양(孝養)하지 못하고 떠나는 서러움과 탄식을 절절한 어조로 노래하였다. 孝友慈仁克盡婦道侍家君病一年夜夜禱天願以身代嘗糞嘗藥至誠感人竟至不淑殯殮喪葬無不盡節飮藥而卒卽辛酉四月八日也殮時得命送哀辭一百二十句及遺書九章於懷 中哀辭則自歎薄命義當殉節遺書則托孤托家也甲子回多士呈單命旌 韓鎭九(한진구)婦人夫死百日從死有遺書命 淸州人父煜道歡基處事之以禮循節之從 丙子殉節功容不獨以㤠婦稱之有 旌閭臣維謙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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