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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랑공 한질과 아들 한치형

관리자 2023.10.02 09:38 조회 수 : 22

 

정랑공 한질(한확.한전의 )

 

충청도 도사 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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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3 26/02/30 (경술) 001 / 충청도 도사 한질의 문안에 이 뒤로는 삼가하여 하지 말 것을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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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도사(都事) 한질()이 와서 문안을 드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 초수(椒水) 행차에는 참으로 간편한 것을 따르려 하였는데, 충청도 도사가 지경을 넘어 왔으므로 번거로운 폐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 뒤로는 삼가서 이같이 하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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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4 26/05/02 (신해) 001 / 충청도 관찰사 김조와 도사 한질 등에게 말과 옷 등을 하사하다

충청도 관찰사 김조(?)에게 안장 갖춘 말 1필을, 도사 한질(?)에게 옷 두 벌[], 도차사원(都差使員) 청주 목사 박효함(朴孝?)과 판관 김양(金壤)에게 각각 옷 한 벌씩을 하사하였다.

 

세종 109 27/07/12 (갑신) 002 / 사간원에서 조순생과 한질에게 관직을 제수한 것에 대해 반대하다

사간원에서 아뢰기를,

이제 조순생(趙順生)은 수령을 지내지 않았는데 통훈(通訓)을 제수하였으니 법에 어긋남이 있고, 또 한질(?)은 이조 판서 한확(韓確)의 동복 아우이며, 이계녕(李繼寧)은 사위인데, (?)은 중추 도사(中樞都事)로 부곡참(副曲籤)에 옮기고, 계녕이 상서 녹사(尙瑞錄事)로 직장(直長)에 승진되었으니, 상피(相避)의 법이 이미 엄한데도 틈을 타서 계달하여 성법(成法)을 무너뜨렸으니 고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순생은 오래 마정(馬政)을 맡았으므로 내가 특지(特旨)로 제수하였고, 한질은 상의원(尙衣院)에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한관(閑官)에 옮기려 한 것 뿐이다. 어찌 사의(私意)가 있겠는가. 계녕은 내가 장차 고치겠다.”

하고, 도승지 유의손(柳義孫)에게 이르기를,

간신(諫臣)의 말이 실은 정대하니, 금후로는 이같이 상피(相避)하는 사람은 제수하지 말라.”

하였다. 순생은 다른 재능(才能)이 없는데 다만 바둑으로 이름이 알려져 오래 사복(司僕)을 맡겼었고, ()은 정치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멋대로 사정(私情)을 행했으니, 실로 배우지 못하고 방술(方術)이 없는 소치였다.

 

 

연산 046 08/10/03 (임인) 001 / 영의정 한치형의 졸기

영의정 한치형(韓致亨)이 죽었다.

그의 자()는 통지(通之). 소혜 왕후(昭惠王后)3626) 의 사촌 오라버니다. 약관(弱冠) 때 혜장 대왕(惠莊大王) 께서 불러 보고 군직(軍職)에 임명하였고, 여러번 전직(轉職)하여 사헌부 감찰(監察장령(掌令사복시 소윤(司僕寺少尹)이 되었다. 성화(成化) 3년 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임명되었으며, 얼마 안 되어 승정원의 좌부승지(左副承旨)로 발탁되었다가 좌승지로 전임(轉任)되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승진되었다. 무자년 에 함길도(咸吉道) 관찰사에 임명되고, 돌아와서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으로 임명되었다. 신묘년 에 좌리 공신(佐理功臣)으로 책록(策錄)되고 잠시 후에 형조 판서로 승진되었으며 여러 차례 호조 판서·병조 판서로 전임되었다가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으로 승진되었다. 병진년3633) 에 우의정에 승진하고 전임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이때에 죽으니 나이가 69세다. 시호(諡號)는 질경(質景)이니, 충성스럽고 정직하여 간사함이 없어서[忠正無邪] ()이라 했고 의리에 의하여 성사하여서 [由義而濟] ()이라 했다.

성품이 순박하고 침착하여 말이 적었으며 실지를 속여 겉을 꾸미는 것을 일삼지 않았다. 관직에 있어서는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사의(私意)로써 법을 굽히지 않았다. 집정(執政)이 일찍이 한치형을 위하여 그의 외손(外孫)에게 벼슬을 주려고 하니, 이를 제지해 말하기를 이 늙은 것 때문에 벼슬을 어리석은 아이에게 줄 수는 없다.’ 하고는 마침내 허락하지 않았다.

공은 태어난 지 18년 뒤에 벼슬에 나아가 세묘(世廟)ㆍ예묘(睿廟)ㆍ성묘(成廟) 및 아상(我上, 연산군을 말함)을 두루 섬겼으니 밤낮을 합하여 모두 52년이나 된다. 백부(栢府, 사헌부)에 들어가서는 감찰(監察)과 장령(掌令)과 대사헌(大司憲)을 지내면서 조정의 기강을 진기(振起)하였고, 은대(銀臺, 승정원)에 올라서는 좌부승지(左副承旨)와 좌우 승지(左右承旨)를 지내면서 왕명을 적절하게 출납하였으며, 전선(銓選, 관원을 전형하는 일)할 때에는 용사(用捨)가 공정하였고, 탁지(度支, 호조)에 있을 때에는 재용(財用)을 풍족하게 하였고, 두 도()에 감사(監司)로 나가 교화를 펼 때에는 선정(善政)으로 다스려 백성들이 유애비(遺愛碑)를 세워 송덕(頌德)하였다. 공신(功臣)에 봉해져 종정(鐘鼎)에 훈업이 새겨지고 기린각(麒麟閣)에 초상(肖像)이 그려졌으며, 경조 판윤(京兆判尹)을 지낸 뒤에 사구(司寇, 형조 판서)와 사마(司馬, 병조 판서)를 역임하니,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이 숨을 죽이고 군정(軍政)이 제대로 수거(修擧)되었다. 추밀부(樞密府)를 관장하며 도총관(都摠管)을 겸대하니, 임금이 의지하고 신임함이 중하였고 인망(人望)이 훌륭하였다. 삼태(三台, 의정부 삼정승)를 역임하며 백규(百揆)를 총괄하였으니 임금께서 심복(心腹)처럼 여기고 명당(明堂)의 주석(柱石)과 같아서 백성들이 바야흐로 그의 보살핌을 우러러 바랐는데, 병에 한번 걸리더니 오랫동안 낫지 않아서 일어나 일을 살피지 못한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어느 날 가인(家人)의 꿈속에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이 채색 가마를 어깨에 메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앞뒤의 위의(威儀)가 매우 성대하였으며 공이 홀연히 가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공은 이미 별세하였다. 이때가 홍치(弘治) 임술년(壬戌年, 1502년 연산군 8) 10월 임인일(壬寅日)이었으니 공의 나이는 69세였다. 그해 12월 병오일(丙午日)에 양주(楊州)의 서산(西山) 이동(梨洞) 언덕에 장사지냈으니, 국가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공에게 족고(族姑)인 한씨(韓氏)가 있었는데 일찍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 선제(先帝)의 궁인(宮人)이 되어 여러 황제의 권우(眷遇)를 받았고 성지(聖旨)를 내려 족인(族人)을 중국에 왕래하게 요청하였다. 이 때문에 한씨 일족이 누차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화(成化) 연간에 공이 주청사(奏請使)에 충원되어 가서 명확하고 자세하게 주대(奏對)하고 거조(擧措)가 예법에 맞으니, 황제가 특별히 서대(犀帶) 한 개를 하사(下賜)하였다. 공이 그 서대를 허리에 두르고 돌아오자 온 조정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찬탄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천자에게 선물을 받은 것은 고금을 통틀어 한 사람 뿐이다.”고 하였다.

공은 타고난 자품이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통명(通明)하고 확실(確實)하였으며, 일을 고려함이 주밀하고 기미를 알아챔이 귀신같았다. 벼슬에 나선 이후로 숱한 관직을 맡아 지내면서 한번도 잘못한 적이 없었고, 상신(相臣)이 되어서는 무릇 국가의 일을 밤낮으로 걱정하고 헤아리어 죽 벌여 적어서 벽에다가 붙여놓고 앉거나 누울 때에 바라보았고 마음에 얻은 것이 있으면 번번이 임금에게 계청하여 시행하였다. 그러므로 공이 상신의 지위에 있은 뒤부터 폐단은 열거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이로움은 흥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매우 편하게 여겼다.

공의 선취(先娶)는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의 딸인데, 1녀를 낳아 사포 별좌(司圃別坐) 임유침(林有琛)에게 시집가서 4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임세창(林世昌)ㆍ임세방(林世芳)ㆍ임세분(林世賁)ㆍ임세(林世)이고, 딸들은 아직 어리다. 계실(繼室)은 부사(府使) 우연(?)의 딸인데 후사(後嗣)가 없고, 사자(獅子)라는 얼자(孼子, 서자(庶子)를 말함)가 있다.

공을 장사지낸 뒤에 나 홍귀달(洪貴達)이 일찍이 외람되게 말료(末僚)가 되어 공에게 지우(知遇)를 받은 것이 깊었기 때문에 묘지를 쓰고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광릉(光陵, 세조)ㆍ창릉(昌陵, 예종)ㆍ선릉(宣陵, 성종)께서 서로 이어 훌륭하게 다스렸고, 우리 성상(聖上, 연산군)이 그 뒤를 이어 대동(大東)을 무마(撫摩)하셨네. 열성(列聖)이 다스리는 때를 만나 대대로 영웅이 있었는데, 훌륭한 우리 공께서 내리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여, 안위(安危)와 휴척(休戚)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하였도다. 묘당(廟堂)에 우뚝 서서 서대(犀帶)가 혁혁하니,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것이라 만인이 바라보았네. 오래까지 장수하여 백성들이 그 복을 받기를 바랐으나, 채색 가마를 내려 데려가니 하늘은 왜 서둘러 앗아갔나. ()은 가지 않는 곳이 없고 백()은 이 곳에 묻혔으니, 천추 만세토록 높은 벼랑 깊은 골짜기 변함 없을지라, 공의 사적 징험하려거든 이곳이 그 유촉(?)일세.

 

조선 전기의 문신.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사헌, 우의정을 지냈다. 좌의정이 되어 무오사화에 김일손 등을 처형하게 하고, 영의정 승진 후 연산군의 폭정을 충간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았다. 갑자사화에 추죄되어 부관참시되고 일가가 몰살당하였다.

그가 생전에 건의한 법은 시행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첩의 아들 한수(韓遂)는 참형에 처해졌다. 중종반정 이후 신원되었다

 

 

 

한치형(韓致亨)

한치형은 자는 형지(亨之)이며, 본관은 청주(淸州), 좌의정 확()의 조카이다. 음관으로 벼슬하여 좌리 공신으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이 되었다. 병진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질경공(質景公)이고 임술년에 죽으니 나이 69세였다. 갑자년에 화가 무덤에 미쳤다.

공이 형조 판서로 있을 때 너무 부지런하여 늦게 퇴출하기 때문에 낭관(郞官)들이 견디지 못하여 아침 저녁으로 괴로워했다. 그 조카 건()이 정랑으로 있었는데, 한가한 날 가서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하기를, “함종부원군 어세겸(魚世謙)은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출해도 무관한데 아저씨께서는 그리 애쓰실 게 뭐 있습니까.” 하고 말하니,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어함종(魚咸從)은 문장과 도덕이 출중하여 비록 직무에 태만하여도 오히려 취할 게 있지만 나와 너는 달리 뛰어난 점이 없으니 직책을 조심해 지키는 것이 옳지 않으냐. 내 뜻이 그러하다.” 고 하니 건이 부끄러워 물러갔다. 충민공잡기(忠敏公雜記)

韓健------한확의 손자요 한치인의 아들이다.

 

공이 남방으로 순찰하러 갈 때 종사관 두어 사람이 따라 갔었는데, 문득 보니 강가의 화사한 집에 꽃과 대나무가 둘러 있고, 수양버드나무에는 붉은색 준마를 매어 놓고, 폭건(幅巾 벼슬하지 아니한 선비가 한가히 있을 때 쓰는 건)을 쓴 선비가 난간에 기대어 매를 길들이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니 종사관들이 한창 괴롭게 길가던 다음이라 그것을 보고 모두 부러워하였다. 이에 공이 돌아다 보며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저 이에게 전옥서 참봉(典獄署?)이라도 준다면 금방 저 집을 폐쇄해 버리고 말을 달려 조정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소문쇄록

 

[韓致亨家人夢乘輿騰空]

一日家人夢見有黑衣數十 肩綵輿終天下威儀甚盛公忽乘輿騰空而去俄而卒---昭代紀年 燕山甲子被禍

하루는 집사람이 꿈에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수 십명이 채색수레를 어깨에 메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위엄과 의식이 매우 성대하였는데 공이 홀연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얼마 안 있어서 죽었다

한치형은 청주인이니 자는 通之. 연산주 병진(21496)에 크게 임명되어 영상에 이르렀다.

재상이 되어 모든 나라의 일을 나란히 벽에 써 붙여놓고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서 마음에 깨닫은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아뢰어 시행하기를 청하여 폐한 것을 거행하지 않음이 없었고, 이로운 일은 일으키지 않음이 없으니 백성들이 편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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