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명나라 말의 혼란기에 민간 주도로 성을 쌓고 대청 항쟁을 벌였던 송가성(宋家城)에 관한 내용은 한국은 물론 중국 학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명청 교체기 북경(北京) 인근 산해관(山海關)의 서쪽, 옥전현(玉田縣)과 계주(薊州) 중간 지점에 민간이 축조한 작은 규모의 송가성은 17세기 말 인평대군의 언급을 시작으로 19세기 말까지 조선 사행단의 주목을 받아 여러 연행록에 그 기록이 이어서 나온다.대명의리를 주장하던 조선인들이 명나라 민간의 대청 항쟁터 송가성에 관심을 보인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연행록에 등장하는 송가성은 마을 이름만도 10가지가 넘고 축조자나 축조 배경도 서로 다르다. 관련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인평대군 류의 실제와 부합하는 기록도 있지만, 송가성을 대명의리의 상징으로 여기는 기록자의 주관적 오류도 많았다. 현장을 방문한 기록자라고 하더라도 청나라 초기의 특수한 토지제도와 신분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류의 해석을 남긴 경우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연행록 상의 송가성 관련 기록을 전면 검토하여 서술자 개입이 초래된 경우를 탐색함으로써 이 자료를 바르게 해석하려고 했다.이 연구는 인평대군이 처음 소개한 『연도기행(燕途紀行)』(1656)에서부터 이승오(李承五)의 『관화지(觀華誌)』(1887)에 이르기까지 송가성 관련 기록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하여 서술자 개입 현상이 보이는 송가성 관련 기록의 신빙성 문제를 고찰하고 이 기록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송가성 기록은 현재 중국 사서에서 찾아볼 수 없어 연행록의 기록이 신빙성을 얻을 경우 명청 교체기 경기 지역의 사회경제상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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