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韓元帥東征到咸州
圃隱先生文集卷之二
癸卯八月。
從韓元帥東征到咸州。兵馬使羅公率精兵助征西北
계묘8월 한원수의 동정을 따라
함주에 와 병마사 나공이 정병을 거느리고 서북을 치는 것을 돕다
聯鞍千里遠從軍----- 나란히 말을 타고 천리 멀리 종군하여
欲到咸州又送君----- 함주에 오자마자 또 임자를 보내니
政是男兒腸斷處----- 정말로 사나이의 애를 끊는 곳이라
私風畵角不堪聞----- 추풍에 화각소리 차마 듣지 못할레
말안장 천리에 이어 멀리 종군 하였으니
함주에 이르러서 또 그대를 보내노라/
이것이 바로 남아의 애를 끊나니
가을 바람에 나팔소리 듣기도 어렵구나
*한 원수는 韓方信
태종 005 03/04/21 (정묘) 002 / 검교 좌정승 우인렬의 졸기
검교 좌정승(檢校左政丞) 우인렬(禹仁烈)이 죽었다. 인렬은 단양(丹陽)사람인데, 도평의 녹사(都評議錄事)로 출신(出身)하였다. 기해년에 홍건적(紅巾賊)이 와서 침공하니, 한방신(韓方信)으로 원수(元帥)를 삼고, 인렬로 장무(掌務)를 삼았다. 하루는 원수(元帥)가 종사 군관(從事軍官)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는데, 인렬이 받기를 청하였다. 원수가 말하기를,
“장무(掌務)는 부서(簿書)를 맡을 뿐이지, 군사는 받아 무엇하는가?”
하였다. 굳이 청하니, 원수가 허락하고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겼다. 접전(接戰)함에 이르러 몸소 사졸(士卒)에 앞장서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드디어 조정에 천거되어 감찰 어사(監察御史)를 제수받고,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임신년에 우리 태상왕(太上王)께서 원종 공신(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주었고, 기묘년에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제수되고, 계미년에 검교 좌증승(檢校左政丞)에 승진되었는데, 병으로 집에서 죽으니, 나이가 67세였다. 부음이 들리매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제(致祭)하였으며, 시호를 정평(靖平)이라 하였다. 인렬은 관후(寬厚)하고 충직(忠直)하여, 일찍이 합포(合浦) 원수(元帥)가 되어 역전(力戰)하여 적을 물리쳤고, 전후(前後)로 경사(京師)에 입조(入朝)한 것이 무릇 다섯 번이었다. 아들이 두 사람이니, 우양선(禹良善)·우양수(禹良壽)이다.
【원전】 1 집 263 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인사-관리(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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