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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녕의 장인 권중화

관리자 2023.10.15 16:46 조회 수 : 42

안동권씨 14세손

 

복야공파(僕射公派) 파조(派祖) 권수홍(權守洪)의 고손(高孫)

13世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문탄공(文坦公) 일재(一齋)권한공(權漢功)의 次子

20世 참판공(參判公) 동봉(東峯) 권극립(權克立)의 6代祖

諱 : 중화(仲和)

字 : 용부(庸夫)

號 : 동고(東皐)

諡號 :문절(文節)

官 : 영의정(領議政), 예천백(醴泉伯), 대제학(大提學)

子 : 방위(邦緯)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우·좌부대언(右左副代言)을 거쳐 지신사(知申事)로 전선(銓選)을 담당하였다. 1377년(우왕 3)에는 정당문학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시험을 주관했으며, 문하에서 이름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 뒤 삼사좌사(三司左使)·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하였다.

1390년(공양왕 2)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먼 곳으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 나와 삼사좌사로 다시 등용되고, 이어 문하찬성사·상의찬성사(商議贊成事)를 역임하였다. 1392년 고려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보은사로 갔다가 왕조가 바뀐 직후 돌아왔다.

1393년(태조 2)에 삼사좌복야로서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를 겸임하면서, 새 도읍지 한양의 종묘·사직·궁전·조시(朝市)의 형세도(形勢圖)를 올렸다.

그 뒤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판문하부사가 되었으며, 1396년에는 사은진표사(謝恩進表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8년예천백(醴泉伯)에 봉해졌다.

1404년(태종 4) 우의정이 되었다가 그 뒤 태종 때 영의정부사가 된 뒤 벼슬을 그만두었는데, 평생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다.

한편, 의약에 정통해 조선초에 고려말경에 전해온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이 너무 간요하다 하여 서찬(徐贊) 등과 함께 다시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을 편집하였다.

그리고 1399년(정종 1)에 조준(趙浚)·김사형(金士衡)의 명령에 따라 한상경(韓尙敬)과 함께 『신편집성마 우의방(新編集成馬牛醫方)』을 새로 편집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사(故事)를 비롯해 의약·지리·복서(卜筮)에 통달하고 전서(篆書)에도 능하였다. 작품으로는 양주에 있는 회암사나옹화상비(檜巖寺懶翁和尙碑)와 개성에 있는 광통보제선사비(廣通普濟禪師碑)의 전액(篆額)의 글씨를 남겼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파조 권수홍의 증손 권한공은 충선 충숙왕때 도첨의정승을지냈다.

권한공의 맏아들 권중달(화원군에 봉군)의 사위는 목은 이색이다.

권한공의 둘째아들 권중화는태종때 영의정을 지냈고 . 사위은 청주한씨 韓寧으로 인수대비의 조부님이된다.

권한공의 후손은 증손자 상주목사 권집경이 무남함으로써 무후가 된다.

고려조 염제신(문하시중)과 유총(右副代言)은 권한공의 사위가 된다.

 

『동고선생일고(東皐先生逸稿)』는 권중화(權仲和 ; 1322∼1408))의 문집이다

본문은 <年譜>에 이어 賀詩로써 <賀孫三司靖平公洪亮賜几杖> 1首가 있고‚

임금은 모름지기 喜怒哀樂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요지의 <筵說> 1편이 있다.

附錄에는 權近의 <上東皐權相國詩>와 李穡이 쓴 <贈權四宰赴上國詩> <贈權相國之上國><題東皐扁楣後> 등 5題 8首의 詩가 있다.

계속하여 <海東耆英會序>(權近 撰)<紫霞洞十仙會目><會約節目>(十仙會의 節目)<原從功臣錄券><天文圖序>(權近 撰)이 있고<後叙>(權周郁 撰)가 부기되어 있다.

 

 

 

上東皐權相國詩-----權近

 

甲戌夏 近僑萬玄化洞吾宗領三司相國邸第之北一造.....

 

1394년(태조 3) 여름에 제(權近)가,

우리 일가영삼사사 상국(領三司事相國, 權仲和) 저택의 북쪽에 붙여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 가서 뵙고 물러 나온 뒤 수 일 만에 병이 걸려,

달이 넘도록 낫지 않아서 자리에 누워 신음하였기에,

항상 다시 찾아봅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홀연히 어느 날, 장수(長鬚)를 보내어 귀한 선물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잔치에 임금을 모셨는데, 임금께서 진어하시던 음식을 거두어 나에게 내리셨다.

은총이 지극한지라 내가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없으니,

친척과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 임금이 주신 영광을 빛나게 하여야겠다."라고 하였다.

제(權近)가 병을 참고 일어나서, 절하여 받고도 몸소 가서 사례하지 못하고 또 말하기를, "공(權仲和)은 넓은 재국(才局)과 정통한 지식과 맑은 덕행과 단아한 명망으로 성조(盛朝)의 개국(開國)하는 날을 만나서, 전장(典章), 생용(笙鏞), 보불을 만들어

일대(一大)의 정치를 일으키는 것은, 임금이 반드시 공(權仲和)에게 물은 뒤에 정하였고,공은 조정의 전장(典章)을 익히 알고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여,

매사를 반드시 옛과 지금을 인증하여 섬세하고 정밀하게 하여 청문(淸問)에 답하였으므로, 번번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임을 입었습니다.

물러나오면 겸손하고 조심하여 말을 못하는 것 같이 하고, 일호(一毫)도 자긍(自矜)하는 빛이 없었고, 한거(閒居)할 적에는 도서를 즐기면서 집안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므로,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중히 여겼고, 물의(物議)가 이 때문에 높게 여겼으니, 지위가 삼사(三司)를 거느리고 존귀(尊貴)가 백호에 으뜸이 되어 은총의 후함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權近)는 공(權仲和)에게 자손의 항렬이 되며, 일찍이 연묵(연墨)의 말기(末技)로 공(公)을 전방(銓房), 문사(文司)에 20여 년을 섬겼는데, 은의로 대우한 것이 깊고 오래니 마땅히 조석으로 계속하여 뵙고 섬기기를 부모같이 하여야 하는 데도 용열(庸劣)하고 게을러서 예(禮)와 신의를 폐하고 문하(門下)에 찾아가 가르침을 듣는 것이 여러 달만에 겨우 한 번 정도이니, 공(權仲和)을 저버림이 많습니다.

마땅히 무례한 것을 꾸짖어 절교하더라도 아무 말 못할 처지인데, 이제 끊지 않고 거두어 주고 은총을 나누어주니, 이것은 공의 넓고 큰 도량과 인자한 덕이 또한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느껴 스스로 말 수 없어서 애오라지 졸(拙)한 시 두 절구(絶句)를 지어 좌우에 바쳐, 위로는 공의 하사받은 영광을 치하(致賀)하고 아래로는 나의 감사히 생각하는 정을 사례합니다.

 

[權近의 詩]

성조에서 노성한 신하를 높이니------ 盛朝崇重老成臣

물망이 높아 진신을 거느렸네-------- 雅望巍巍領縉紳

잔치 모시고 돌아오매 인하여 남은 음식을 내리니 ------- 侍宴歸來仍賜俎

은택이 널리 마을 사람에게 미쳤네 ------ 恩波覃及里閭人

비 오는 날 병져 누웠으니 해는 왜 이리 긴가 ------- 雨中伏枕日何長

홀연히 가동을 보니 기뻐서 미칠 듯하네 ------ 忽見家童喜欲狂

내사를 상공이 나누어 주었다 하거니 ------ 報?相公分內賜

진귀한 음식이 오히려 어로의 향기 띠었네 ------- 珍羞猶帶御爐香

 

목은시고 제25권

용부(庸夫)가 자기 집에 편액(扁額)을 붙이려면서 그 이름을 나에게 물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선생은 성(城) 동쪽에 사는데, 정원(庭院)이 깊고도 그윽하고 구학(丘壑) 또한 사랑스러우니, 청컨대 ‘동고(東皐)’라고 해 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용부가 되었다고 말하므로, 이에 시(詩)로써 그 의미를 기록하는 바이다.

 

동쪽 언덕을 그 옛날 연명이 올랐었으니 / 東皐昔有淵明登

세속 초월한 높은 풍도 어이 그리 늠름한고 / 高風絶塵何稜稜

오두미에 허리 안 굽히려 문득 사직하고 / 折腰五斗便掛冠

홀로 긴 휘파람 부니 천지가 광활했었네 / 獨舒長嘯天地寬

용부 선생은 바로 나의 동년이거니와 / 庸夫先生我同年

정강하고 일에 익숙함이 군현에 뛰어나는데 / 精??練超?賢

성 동쪽의 저택이 산 중턱에 의지해 있어 / 城東庭宇倚翠微

한 언덕 한 구렁이 병풍처럼 에워쌌는지라 / 一丘一壑如屛圍

동고에서 서쪽 바라보면 생각은 그리우련만 / 東皐西望思依依

아득히 선왕은 이미 용 타고 승선했으니 / ?渺鼎湖龍已飛

바라봐도 볼 수 없이 석양만 비출 게고 / 望之不及空落暉

광암사 비석은 연기 아지랑이에 묻혔으리 / 光巖碑石埋煙?

늘그막에 어김없이 천명을 즐기거니 / 桑楡?景樂無違

내가 이 사람이 아니면 누구와 함께하랴 / 吾非斯人誰與歸

 

[주]동쪽 …… 부니 : 연명(淵明)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을 때, 군(郡)의 독우(督郵)가 팽택현을 순시차 나오게 되어, 현리(縣吏)가 도잠에게 의관(衣冠)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자, 도잠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는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서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을 섬길 수 없다.” 하고는, 당장 사직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어서 자기의 뜻을 부쳤었는데, 그 〈귀거래사〉에 “동쪽 언덕에 올라서는 휘파람을 길이 불고, 맑은 시냇물을 임해서는 시를 지으리라.[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용부(庸夫) 선생은 …… 동년(同年)이거니와 : 용부 선생은 곧 자가 용부인 권중화(權仲和)를 높여 일컬은 말인데, 동년이라고 한 것은 그가 공민왕 2년 문과(文科)에 목은과 함께 급제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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