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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17:00
소재집 제2권(진도에 귀양와서)
석전을 지내고 나서 향교의 유생들이 제물을 나누어 주므로, 술을 마시고 취하여 두 수를 읊다
2월이다. 〔釋奠後校生分餕醉吟二首 二月〕
가을에는 순천의 술을 마시었고 秋飮順天酒
봄에는 진도의 술잔을 잡고 보니 春携珍島杯
봄가을로 쫓겨난 신하가 있는 곳에 春秋放臣在
술잔 속의 성인이 찾아오누나 杯酒聖人來
새소리는 어찌 끊어진 적 있으랴만 鳥哢何曾斷
검은 구름은 걷히려 하지 않는구나 雲陰不肯開
우연히 한번 곤드레로 취했으니 偶然成茗艼
누가 옥산이 무너질 줄 알았으랴 誰認玉山頹
봄 풍광 구십 일 가운데 九十靑春色
삼분의 일은 이미 지났는지라 三分謝一分
감상에 젖어 모두들 아쉬워하고 感傷皆屑屑
행락하느라 분잡스럽기도 하구나 懽樂又紛紛
정명을 안들 누가 순히 받을 수 있으랴만 知命誰能受
맘을 붙인 데 있으면 괜한 걱정은 않으리라 棲心不浪勤
일생에 기쁨과 노염 내색하지 않는 걸 一生無喜慍
내 또한 그대로 하고자 할 뿐이네 吾亦欲云云
[1] 술잔 …… 찾아오누나 :
여기서 성인(聖人)은 곧 청주(淸酒)를 가리킨다. 삼국 시대 위(魏)의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은 술을 몹시 좋아하였는데, 한번은 금주령(禁酒令)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하였다. 교위(校尉) 조달(趙達)이 가서 조사(曹事)를 묻자 “내가 성인에게 맞았다.〔中聖人.〕” 하므로, 조달이 그 사실을 조조(曹操)에게 아뢰니 조조가 매우 진노하자, 장군(將軍) 선우보(鮮于輔)가 조조에게 아뢰기를 “평일에 취객들이 청주를 성인이라 하고 탁주를 현인이라 합니다. 서막은 성품이 신중한 사람인데, 우연히 취해서 한 말 일 뿐입니다.
〔平日醉客謂酒淸者爲聖人, 濁者爲賢人. 邈性修愼, 偶醉言耳.〕”라고 해명했던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2] 우연히 …… 알았으랴 :
옥산(玉山)이 무너진다는 것은 술에 몹시 취하여 곧 넘어질 듯한 자태를 형용한 말로, 본디 진(晉)나라 산도(山濤)가 일찍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사람됨을 평하여 말하기를 “혜숙야의 사람됨은 빼어난 풍채가 마치 홀로 우뚝 선 낙락장송과 같고, 그가 취했을 때는 기울어진 모습이 마치 옥산이 곧 무너지려는 것과 같다.
〔嵇叔夜之
爲人也, 巖巖若孤松之獨立, 其醉也, 傀俄若玉山之將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리고 진(晉)나라 때 산간(山簡) 또한 술을 매우 좋아했던바, 그가 일찍이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을 적에 현산(峴山) 아래 위치한 습씨(習氏)의 양어지(養魚池)가 매우 경치가 좋아서, 매일 그곳에 나가 온종일 술을 마시고 곤드레가 되어 돌아오곤 하여 풍류를 만끽했는데, 이 때문에 심지어 당시 아동(兒童)들이 그를 두고 노래하기를 “산공이 어디로 나가는가 하면, 저 고양지로 나가는구나. 석양엔 수레에 거꾸러져 돌아와, 곤드레가 되어 아무것
도 모른다네. 때로는 말을 탈 수도 있지만, 백접리를 거꾸로 쓰고 온다네.〔山公出何許, 往
至高陽池. 日夕倒載歸, 酩酊無所知. 時時能騎馬, 倒著白接䍦.〕”라고 했으며,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서도 산간을 두고 읊기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한 푼 돈이라도 들여 살 것 없고, 옥산은 스스로 무너졌지 남이 민 게 아니로다.
〔淸風明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容止》 《李太白集 卷6》 여기서는 저자 자신이 혜강이나 산간처럼 이렇게 취한 모습을 아무도 미처 몰랐을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3] 정명(正命)을 …… 있으랴만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명 아님이 없으나 정명을 순히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명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도 서지 않는다. 도리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이요, 죄를 짓고 죽는 자는 정명이 아니다.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
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곧 정
명을 안다 해도 그 정명을 순히 받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한 말인 듯하다. 《孟子 盡心上》
소재집 제3권
봄눈〔春雪〕
남녘에 눈 펄펄 날리는 저녁이요 南雪飄颻暮
동풍이 쌀쌀하게 부는 봄이로다 東風料峭春
눈송이는 각각 제멋대로 날거니와 飛花一任態
기울어진 나무는 한쪽만 하얗구려 欹樹半邊新
계곡은 근원 없는 물을 쏟아 내리지만 澗注無源水
조수는 한계 있는 나루를 넘지 않누나 潮依有限津
다시 그 몇 무리 오리 떼가 더해져서 還添幾羣鴨
제멋대로 짐짓 사람을 속이는고 恣意故欺人
계곡은 …… 내리지만 : 근원 없는 물이란 곧 눈 녹은 물을 가리킨다.
조수(潮水)는 …… 않누나 : 눈이 녹아 흘러도 바닷물은 불거나 줄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다시 …… 속이는고 : 하얀 오리 떼가 눈빛에 섞이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말한 듯하나자세하지 않다.
碧亭待人 [벽정대인] /朝鮮, 盧守愼[노수신]
曉月空將一影行 [효월공장 일영행] 새벽달 쓸쓸히 그림자 끌고가니
黃花赤葉政含情 [황화적엽 정함정] 국화와 단풍은 정을 담뿍 머금었네
雲沙目斷無人問 [운사목단 무인문] 구름과 모래 아마득히 물어볼 사람 없어
依遍津樓八九楹 [의편진루 팔구영] 나루 누각 여덟아홉 기둥을 기대어 돌고 있네.
註: 空將[공장]= 쓸쓸히 거느리다
政[정]= 한창
目斷[목단]= 눈끝 닿는데 까지
依遍[의편]= 기대어 두루 돌다
楹[영]= 기둥
說: 새벽달이 질 때 까지 기가려도 올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에는 인적하나 없어 물어 볼 수도 없다. 누각의 기둥만 의지하며 것도는 초초한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