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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 15:13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 발문
정유년 4월 20일 밤에 바야흐로 자리에 누우니, 정신이 아른하여 잠이 깊이 들어 꿈도 꾸게 되었다. 그래서 박팽년과 더불어 한곳 산 아래에 당도하니, 층층의 멧부리가 우뚝 솟아나고, 깊은 골짜기가 그윽한 채 아름다우며,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있고, 오솔길이 숲 밖에 다다르자,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서성대며 어디로 갈 바를 몰랐었다. 한 사람을 만나니 산관야복(山冠野服)으로 길이 읍하며 나한테 이르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
하므로 나는 박팽년과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니, 산 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길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굽이로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한다.
그 골짜기를 돌아가니 마을이 넓고 틔어서 2, 3리쯤 될 듯하여, 사방의 벽이 바람벽처럼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데,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이 어리 비치어 붉은 놀이 떠오르고, 또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는데, 싸리문은 반쯤 닫히고 흙담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과 개와 소와 말은 없고, 앞 시내에 오직 조각배가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니, 정경이 소슬하여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 이에 주저하여 둘러보기를 오래 하고, 박팽년한테 이르기를,
“바위에다 가래를 걸치고 골짜기를 뚫어 집을 지었다더니, 어찌 이를 두고 이름이 아니겠는가, 정말로 도원동이다. ”
라고 하였다. 곁에 두어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항, 신숙주 등인데, 함께 시운을 지은 자들이다.
서로 짚신감발을 하고 오르내리며 실컷 구경하다가 문득 깨었다.
이 세상 어느 곳이 꿈꾼 도원인가----(世間何處夢桃源)
은자(隱者)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野服山冠尙宛然)
그림 그려 보아 오니 참으로 좋을씨고----(著畵看來定好事)
여러 천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自多千載擬相傳)
그림이 다 된 후 사흘째 정월 밤-----(後三日正月夜)
치지정에서 마침 종이가 있어 한마디 적어 맑은 정취를 기리노라----(在致知亭因故有作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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